‘낸시 스프링어(Nancy Springer)’의 ‘우아한 가출(Enola Holmes and the Elegant Escapade)’은 ‘에놀라 홈즈 시리즈(The Enola Holmes Mysteries)’ 8번째 책이다.

표지

‘셜록 홈즈(Sherlock Holmes)’라는 캐릭터에 기대는 작품은 생각보다 많다. 그만큼 그가 희대의 탐정이라 할만큼 특별하고 매력적인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홈즈가 현역인 시절에도 노골적으로 그를 등에 업은 작품이 나왔을 정도니까. 그래서 저자인 코난 도일이 불만을 표하고, 어쩔 수 없어 이름을 바꾸기도 했었다.1

그랬던 것이 지금 아무런 거리낌없이 실명(?)까지 당당하게 쓰게 된 것은 셜록 홈즈의 저작권이 거의 만료2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화나 드라마, 심지어는 그를 기본 배경으로 하는 후속작스런 소설까지 자유롭게 나오는 거다.

이 소설 시리즈도 그런 흐름으로 나온 것 중 하나로, 처음부터 현대 대중적 기류를 많이 집어넣은 것이 특징이다. 간단하게 말해 페미니즘적이라는 얘기다.

홈즈의 여동생을 주인공으로 삼은 것 부터가 그렇다. 당시 시대배경상 현재로선 남녀차별적이라 할 수 있는 점들을 거침없이 까면서 적극적으로 페미니즘 성향을 마구 드러냈는데, 그런게 어떻게 보면 참 시대를 잘 타 성공했다고 할 수 있겠다.

다만, 그러면서 원래 홈즈 시리즈의 장점 중 하나였던 시대상이 크게 틀어졌고, 무엇보다도 홈즈라는 캐릭터를 망쳐놓았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점이다. 작가가 주인공을 부각하는 방법으로 조연을 뭉개는 쉬운 방식을 택해서 벌어진 일이다.

시리즈 초반에는 그래도 새로운 캐릭터인 에놀라를 위해 홈즈가 희생도 좀 할 수도 있는 것이라도 생각하기도 했었다. 이제껏 홈즈의 인기에 기댄 작품들이 숫하게 저지른 짓이라 딱히 새로울 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벌써 8권에까지 이르렀으니 이젠 그만 좀 홈즈에게서 벗어나 에놀라 자신의 매력을 보여줬으면 했는데, 놀랍게도 여전히 홈즈에게 기대고 있다는 것에 사실 좀 충격을 받았다.

그렇게 보여줄 게 없나.

그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영국인이 아니라 미국인 작가라서 그런 걸까. 어려서 홈즈 시리즈를 읽고 자라 지금에 와 홈즈 시리즈의 2차 창작물을 만들었다는 작가 소개가 있다는 게 무색하게 홈즈와 홈즈 시리즈에 대한 애정과 존중같은 게 썩 보이질 않는다.

더 문제는 홈즈가 없는 곳에서도 에놀라를 대단하고 매력이게 그리지 못했다는 거다. 오히려 말도 안되는 판단이나 이상한 행동을 하기도 해서, 홈즈를 이겨먹는다는 부분과의 괴리를 더욱 크게 느끼게 한다.

이게 어떻게 이렇게 인기를 끌고 있는 걸까.

확실히 하자면, 이런 부정적인 평가는 어디까지나 셜록 홈즈 시리즈의 연장에서 이 시리즈를 볼 때에 커지는 것이다. 그런점에서 홈즈의 여동생이라는 정체성을 시리즈의 첫번째 요소로 내세운 것은 쫌 잘못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셜록 홈즈 시리즈를 잇지만 않았어도 평은 좀 달랐을 거다. (물론, 화재성과 인기 또한 달랐겠지만.)

이 소설은 전혀 셜록 홈즈 시리즈와 같은 추리 소설 같은 게 아니다. 그보다는 적당한 모험이 곁들여진 페미니즘 영어덜트 소설이라 하는 게 옳다. 캐릭터 설정과 이야기에는 다소 의문스러울만한 앞뒤가 안맞는 것도 있지만, 혹시나 영상화를 한다면 그럭저럭 봐줄만한 영상미가 있는 모험도 있고, 가부장적이고 (현대를 기준으로 봤을때)시대착오적인 여성차별을 꼬집으며 현대 페미니니스트들에게 사이다를 안겨줄만한, 나름의 상업적 가치가 있는, 가볍게 볼만한 소설이라는 말이다.

그런 식으로 소설을 다시 보면, 의아했던 장면들도 좀 다르게 보인다. 의욕만이 앞서 보였던 것도 자주적이고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걸로 보이는 식이다. 진지하게 봤을 때는 불만족스러웠던 부분들도 페미니즘적으로는 나름 의미를 찾을 수 있다.3

실로 페미니즘 소설이어야 가치가 있는 소설이다.

이 리뷰는 이북카페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고 작성했다.
  1. 찌질하고 멍청한 ‘헐록 숌즈(Sherlock Holmes)’ 얘기다. 

  2. ‘셜록 홈즈의 사건집’이 1927년에 가장 마지막으로 출판되었으로, 전 작품이 온전히 만료되는건 2023년이다. 

  3. 거꾸로 읽으면, 다분히 자립을 내포한, ‘홀로(Alone)’가 된다는 주인공 ‘에놀라(Enola)’의 노골적인 이름부터가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