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지워줘’는 디지털 성범죄와 잊힐 권리를 그린 소설이다.

표지

인간은 쉽게 휩쓸리고 실수를 저지른다. 그래도 다행히 인간은 또한 쉽게 잊어버리기도해서 한순간의 실수가 설사 큰 고통으로 이어진다고 하더라도 시간이 흐르면 점차 무뎌지면서 결국 이겨내고 다시 일어설 수 있게 되기도 한다. 적어도 얼마 전까지는 그럴 수 있었다.

그러나 인터넷이 널리 대중화되고 별의 벌 것들을 다 저장하고 공유할 수 있게 되면서 더 이상 그럴 수 없게 되어버렸다. 개인의 사적인 것들까지도 너무나 쉽게 공유되고 그렇게 한번 공유된 것들은 결코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소설은 그로 인해 생겨난 디지털 성범죄와 피해의 심각성, 그리고 잊힐 권리에 대해서 잘 그려냈다. 사건에 얽힌 여러 사람들을 각자의 시점에서 그려 그들의 상황과 생각 등을 알 수 있게 한 것도 괜찮고, 사건의 전개나 주요 내용도 잘 담은 편이다.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한 듯한 소설 속 사건이 현실적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문제에 대해서 알리고자하는 저자가 의도는 꽤 성공적이라는 얘기다.

다만, 몇몇 부분에서 완성도가 좀 떨어진다.

인스타그램, 텔레그램 등을 적당히 바꿔 등장시킨 것이 그 하나로, 이름 뿐 아니라 특징도 일부 다르게 묘사했는데 그게 현실의 그것과 충돌을 일으키면서 현실성을 해친다. 차라리 있는 그대로의 이름, 실제 특징을 그대로 그려내는 것이 훨씬 피부로 와닿으며 그것들을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주의를 주는 역할도 할 수 있어 좋지 않았을까.

짧아서 그랬던 건지 등장인물들의 행동도 그렇게 잘 납득이 되진 않는다. 그럴 수 있을만한 요소가 엿보이긴 하나, 그것만으로 그러기엔 좀 약해보인달까. 원래는 좀 다른 비중으로 이야기를 썼다가 지금처럼 바꾼 것이라고 하는데, 그렇다보니 원래 있었던 요소들의 연결이 느슨해져 그런게 아닌가 싶다. 뺄 거였으면 아예 확실히 빼던가, 아니면 전체 분량을 늘려 양쪽 모두 충분하도록 덧붙이는 게 어땠을까 싶다.

이 리뷰는 북카페 책과 콩나무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고 작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