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루이치 노리토시(古市 憲寿)’의 ‘굿바이, 헤이세이(平成くん、さようなら)’는 안락사가 하용된 가상의 일본을 배경으로 한 로맨스 소설이다.

표지

소설은 2018~2019년의 현대 일본에서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데, 실제와 다른 점이 있다면 안락사가 여러 과정을 거쳐 합법화 되었다는 것이다.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되었는지 의외로 잘 써냈는데, 실제로도 제한적이나마 안락사를 허용하는 나라가 있다보니 더 그럴듯 하기도 했다. 그게 소설 속 인물들이 갑자기 안락사 얘기를 꺼내도 어색하지 않게 만든다.

그런 배경 위에 그린, 자신의 말년을 생각하다 결국 안락사를 선택한 남자와 그를 보내야하는 여자의 로맨스는 꽤나 독특하다. 보통의 로맨스 물에서 떠나지 말라는 바램은 죽지 말라는 것으로 바뀌었고, 이별 역시 관계의 해소가 아닌 진정한 의미에서의 헤어짐이기 때문에 각각이 지닌 무게 역시 남달라졌다. 그래서 더 인간의 삶에 대한 묵직한 주제인 안락사를 비교적 가벼운 로맨스로 풀어낸 것이 재미있게 느껴지기도 했다.

문제는 이 소설이 다분히 의도적으로 쓰였다는 거다. ‘안락사’와 ‘죽음에 대한 선택권’에 관한 저자의 생각을 전하려는 게 목적이라는 얘기다. 그게 생각보다 잘 알려지지 않은 안락사의 여러 측면을 일반에게 소개하는 내용이 꽤 들어간 이유다.

그래도 그런 내용 자체는 사실 꽤 괜찮았다. 저자가 어느 한쪽에 서서 부정적이거나 긍정적인 모습 하나만을 보이지는 않아서 더 그렇다. 저자 자신은 긍정적인 쪽이면서도 타의에 의한 소위 등떠밀린 안락사가 이뤄질 수도 있다는 것이나 장기미매처럼 문제가 될만한 것들을 피하지않고 제대로 얘기한 것 역시 칭찬할 만하다. 이런 얘기들이 있기에 안락사에 대해 알게되는 한편 그로 인해 야기될 수 있는 것들도 생각해볼 수 있다.

다만, 그것에 중점을 두어서 그런지 로맨스는 좀 소홀해졌다. 물론, 안락사를 소재로 한 것이나 전개까지는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몇몇 장면 역시 깊은 내면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디테일한 면이 있어 좋다. 문득 전에없이 소소한 일들을 얘기하기 시작한다던가, 죽었는지 아닌지 알 수 없게 준비하는 것이나, 마지막 엔딩 장면이 특히 그렇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작 주인공 둘에게는 크게 공감을 할 수 없었다. 기계처럼 메마르고 공감 능력까지 떨어지는 남자 뿐 아니라 몸 따로 마음 따로인 듯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는 여자도 마찬가지다. 얼핏 보기엔 마치 일반적인 관계인 것처럼 가장했지만, 실제로는 감정 이입이 안될만큼 비정상적이서 좀처럼 이들에게 공감하고 그들의 감정선을 따라갈 수가 없었다. 로맨스 소설로서는 단점인 셈이다. 안그래도 안락사 얘기 때문에 꽤나 분량을 소모했는데, 굳이 관계까지 이렇게 복잡하게 만들 필요가 있었을까.

거기에 결정적으로 남자가 자살로서의 안락사를 택한 이유마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그게 드러났을때는 겨우 그 정도였나 싶어 좀 김이 새기도 했다. 얼마든지 극복할 수도 있는, 대안이 있는 문제였기에 더 그렇다. 애초에 그런 대안밖에 갖지 못했던 사람들은 그럼 뭐란 말이냐. 죽음 뿐 아니라 삶 마저도 너무 가볍게 생각하는 게 아닐까. 이렇다보니 로맨스마저 마치 억지로 쥐어짜낸, 한편의 쇼 같다는 느낌도 든다. 소설인 줄 알았더니 정작 안락사 광고에 더 가까웠다는 말이다.

저자는 자신의 생각을 얘기하는데 소설이라는 형태가 딱 어울려서 이걸 썼다고 했다. 그랬으면 이야기 자체의 완성도도 좀 생각해 줬으면 좋았으련만, 뭔가 그럴싸한 장면만 만들고 그것들을 끝내 제대로 잇지는 못한 느낌이다.

진득하게 들여다보면 생각보다 좋은 점, 생각해볼 만한 것들도 많다. 그러나 그걸 결국엔 좀 가볍게, 어떻게 보면 ‘충동적인 자살의 허용’을 얘기하는 것처럼 그렸기에 아쉬움이 더 많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