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라 로빈슨(春原 ロビンソン)’ 원작, ‘히라케이(ひらけい)’ 그림의 ‘공주님, “고문”의 시간입니다 1(姫様“拷問”の時間です 1)’는 제목과는 달리 꽤나 건전(?)한 먹방 힐링 코미디다.

커버

이 만화는 넓게 보면 일종의 착각물이라고도 할 수 있다. 다만 보통의 착각물이 주인공의 행동을 엉뚱하게 지켜보는 다른 등장인물로 인해 벌어지는 일을 다루는 것이라면, 이 만화는 사람들이 보통 갖고있는 생각 즉 상식을 통해 독자들을 착각시킨다는 것이 다르다.1

제목의 ‘고문’부터가 그렇다. 전쟁 중 붙잡혀 적국의 포로가 된 공주기사, 그녀에게서 왕국을 타파하기 위한 비밀을 캐내기 위해 행하는 고문, 상대도 똑같은 인간이 아니라 전혀 다른 종족인(그래서 더 자인할 것이라 예상케하는) 마족이다. 게다가 이런 상황은 일본 만화에서 자주 다뤄지며 일종의 ‘약속된 전개’가 있기도 했었다. 그러니 독자는 당연히 그와 같거나, 혹은 유사한 일들이 벌어질 것을 상상하게 된다.

하지만, 만화는 그것을 전혀 엉뚱하게 깨부수어 웃음을 자아낸다. 여기엔 고문의 주요 수단을 ‘음식’으로 삼은 게 주요했는데, 먹방이 요즘의 대세 트렌드 중 하나이기도 한데다, 손쉽게 등장인물들과 유사한 감정을 불러일으켜 동감할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때문이 이 장난같은 행위들이 어떻게 고문으로 행해질 수 있는지나 공주가 그에 홀라당 넘어가 굴복해 버리는 것도 어느정도 이해가 된다. 음식 작화가 훌륭해서 더욱 그렇다.

전개 방식도 나쁘지 않다. 고문을 이겨내겠다는 결연한 공주의 모습을 보여주고 공주가 얼마나 대단한지 한껏 추겨세운 이후에 사정없이 (손쉽게) 무너지는 모습을 그림으로써 격차를 더욱 크게 느끼게 하는 게 좋다.

이는 또한 이들이 속한 세계관을 조금씩 풀어내는 것으로도 이어져서, 이야기다운 이야기가 등장하지 않으면서도 다양한 뒷 이야기를 들려주는 효과도 낸다. 생각과 다른 마족들의 모습 역시 마찬가지여서 이 전쟁에는 숨은 뭔가가 있음을 짐작해보게도 한다.

작은 변주지만 참 아이디어가 좋은 만화다.

문제는 변주가 단순한만큼 쉽게 피로해져버린다는 거다. 겨우 몇화를 보는 것만으로도 재미가 쑥 깍여나간다. 계속해서 똑같은 전개 방식과 결론만을 보여주기 때문에 더 그렇다.

더 안좋은 것은 이러한 단점이 앞으로 더 강해질 거라는 거다. 왜냐하면 공주가 털어놓을만한 비밀은 더욱 줄어들 것이고, 마왕이 기껏 얻어낸 비밀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며 뱉어내는 변명도 갈수록 궁색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여러 귀여운 마족 캐릭터들을 등장시켜 매회가 지나치게 똑같아지는 것을 방지하고는 있다만, 1권만으로도 그것이 좀 느껴질 정도라면, 과연 음식과 캐릭터의 매력만으로 어디까지 볼만한 수준을 유지해나갈 수 있을지 좀 우려스럽다.2

일단은 지켜봐야지.

  1. 번외편에서는 일반적인 착각물의 형태를 보여주기도 한다. 

  2. 일본에선 이미 5권(2021-01-04 발매일 기준)까지 발매했다. 인기 없으면 가차없이 잘라버리는 게 일본 만화시장인데… 이걸 보면 그래도 나름 지루해지지 않기 위한 변화 노력을 계속 하고 있는게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