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철 기브니(Rachel Givney)’의 ‘제인 인 러브(Jane In Love)’는 제인 오스틴을 소재로 한 소설이다.

표지

어디서 들어본 듯한 제목에서 어느정도 눈치 챘겠지만, 이 소설은 ‘제인’이 자기 작품을 쓸 당시에 실제로 사랑에 빠졌지 않았을까 하는 식으로 소설과 작가를 엮어낸 가상 역사 소설이다.

아니, ‘역사’라고 붙이기엔 좀 과할지도 모르겠다. 주인공이 살던 시대를 배경으로 그 때를 그려낸 게 아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그러는 대신 옛 시대의 인물인 제인을 현재로 불러내는 방법을 택했다. 타임슬립물이라는 얘기다.

우리가 아는 소위 ‘거장’이라는 사람들은, 미술이나 음악, 심지어 소설에 이르기까지 분야를 가리지않고 당대에 인정을 받은 경우가 굉장히 드물다. 오히려 당시에는 뭐 이딴 걸 만들었냐며 구박받거나, 아무것도 아닌 듯 구석에 처박히는 신세를 면하지 못해서 겨우겨우 가족이나 지인의 도움에 힘입어 생을 이어가다 불행한 결말을 택하기도 하는 등 비참한 인생을 보낸 경우가 많았다.

이런 것들은 단지 안타까운 일화일 뿐 아니라, 그들이 얼마나 시대를 앞서갔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후대에 그것이 다시 평가받고, 이후에 다시 번복되는 일이 없는 걸 보면 말이다. 이것은 어쩌면 거장 자신들도 안다면 깜짝 놀랄만한 것인지도 모른다.

저자는 이것을 여성 작가로서 인정도 제대로 받지 못했을 뿐더러, 평생을 독신으로 외로운 삶을 산 것으로 알려진 ‘제인 오스틴’에게 적용했다.

그러면서 혹시 제인이 뜻밖의 기회를 얻어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과연 어떻게 됐을까 하는 가상의 이야기를 전개하는데 그게 꽤나 흥미롭다. 그녀가 현대로 오면서 시대차이나 현대 인물들과의 만남으로 인해 벌어지는 이야기들이 나름 볼만하다.

다만, 그것은 중후반부를 넘어가면서 점점 약해진다. 심지어 메시지를 담은 후반부로 가서는 안타까워지기까지 하는데, 그만큼 후반부가 썩 좋지 않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다분히 페미니즘적인 메시지를 많이 담고있다. 이야기만 보면 시대상이라던가 그런 것으로 인해 자칫 흐려질 수도 있는데, ‘스탕달’의 발언1을 앞부분에 붙여놓음으로써 그렇게 되지 않도록 처음부터 못을 박아두기까지 했다. 그렇기에 몇몇 부분은 꽤나 노골적인 페미니즘적인 메시지로 읽히기도 한다.

문제는 그게 그렇게 좋은 메시지와 그걸 뒷받침하는 이야기로 쓰여지지 않았다는 거다. 애초에 이야기를 일종의 로맨스로 전개한 것 부터가 문제였다. 그것은 제인이 마땅히 보여주었어야 할 일종의 희생양으로서의 위치나 열사로서의 모습을 이상하게 만든다. 이게 별로 페미니즘적이지 않은데도 어떻게든 그런 쪽으로 밀어붙이려는 것처럼도 보이게 하는데, 후반부 전개가 좀 급박하기에 더 그렇다.

그나마 ‘소피아’의 이야기는 좀 더 (페미니즘적으로) 일관되긴 하나, 그것도 하필이면 연예계의 일화로 다루면서 기존의 작품이나 인물들을 떠올리게 한 것이 안좋았다. 실제했던 인물이나 사건을 진하게 연상케하는 이야기를 넣으면서 실제와는 전혀 다른 상황을 묘사한 것이 일종의 모욕이나 선동처럼 느껴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자연스레 떠오르는 인물의 팬이라면 더 그렇다. 물론 애초에 가상의 이야기라는 건 알고 있긴 하다만, 그렇기에 더욱 굳이 그런 불편함을 남길만한 이야기로 만들었어야 했나 의문이 남는다.

페미니즘적인 메시지에서도 딱히 긍정적이지 않다. 소설적인 극적 연출을 위한 것이었겠지만, 마치 모든 것이 모 아니면 도로 양자택일에 놓여있다는 듯 그린 게 끝내 이해가 가지 않기 때문이다. 이건 제인이나 소피아는 물론 ‘프레드’의 선택에까지 의문을 품게해 이야기에 껄끄러움을 느끼게 한다.

제인의 사랑이 얼마나 원래의 것에서 벗어난 것이었으며, 그렇기에 그것을 이루기 위해선 얼마나 많은 마법적인 영향이 필요했고, 그것이 그녀 자신이 원래 가지고 있던 재능이나 성취같은 것들을 포기해야 하는 것으로 이어지는 것이라던가, 그렇게 포기했던 것들이 사실은 제인 자신이 무엇보다 이루고자 열망하던 것이었다는 것도 작가는 전혀 독자에게 제대로 납득을 시켜주질 않는다. 그러니 뭔가 ‘엥?’하는 사이에 ‘어?’하며 끝나는 의문스런 소설이란 불만족을 남길 수 밖에. 설사 읽을때에는 꽤나 볼만 했더라도 말이다.

로맨스를 그리고 싶었다면 괜한 페미니즘은 빼야 했다. 반대로 페미니즘을 분명히 담는게 목적이었다면, 쓸데없는 로맨스는 애초에 넣지 말았어야 했다. 차마 둘을 동시에 소화해내지는 못할 거였다면 말이다. 억지스레 섞어놓는 결과물은 차마 잘 조합된 비빔밥이라 하긴 뭐한 무언가다.

이 리뷰는 이북카페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고 작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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