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로이(William Roy)’가 쓰고 ‘실뱅 도랑주(Sylvain Dorange)’가 그린 ‘헤디 라마, 가장 경이로운 배우(La plus belle femme du monde: The incredible life of Hedy Lamarr)’는 아름답고 관능적인 여배우이자 발명가였던 헤디 라마의 이야기를 담은 전기 만화다.

표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정도로 눈에 띄는 이 미녀는 외모만큼이나 능력면에서도 대단한 사람이다. 배트맨 시리즈에 나오는 ‘캣우먼’의 모델이 되는 등 다른 사람에게 영감을 주었을 뿐 아니라, 그 자신 역시 배우로서 활약하는가 하면, 그런 대외적으로 널리 알려진 모습에서는 선뜻 생각하기 어려운 전혀 다른 분야에서의 발명도 꽤 여럿 이뤄냈다.

그녀가 ‘조지 앤타일’과 함께 발명한 ‘주파수 도약 기술’은 WiFi나 블루투스, GPS와 같은 현대 무선통신의 원천 기술이라고도 할 정도니 이것 하나만 놓고 보더라도 대단한 업적을 남겼다고도 할수 있겠다.

이 책은 그런 그녀의 어린 시절부터 화려했던 배우 시절, 그리고 그것들에 비하면 초라해 보이기도 하는 말년까지를 그려낸 만화다.

그녀의 삶은 꽤 파란만장했다. 하지만 그건 단순히 그녀가 살았던 시대가 제2차 세계 대전을 지난다거나, 그녀 가족이 당시 많은 피해를 입었던 유대인이었기 때문은 아니다. 오히려 당시 미국에서 활동하던 그녀는 그러한 일에서 조금 떨어져 있었고, 그래서 책에서도 그 부분은 그리 크게 다루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나름 운이 좋은 편이었달까.

문제는 개인적인 삶에서는 썩 그렇지 못했다는 거다. 부유한 집안의 딸로 태어나 부모의 이해에 힘입어 하고 싶은 것도 꽤 자유롭게 하긴 하였다만, 그 결과가 남긴 것은 퇴폐적인 성향도 엿보이는 섹스심벌일 뿐이었으며, 기껏 이룬 가정도 평탄하지 않았다. 심지어 그가 배우외에 가장 열과 성을 다했다고 할 수 있는 발명가 일 역시 좀처럼 인정받지 못했다.

그녀의 업적이 정당한 평가를 받은 것은 그로부터 오랜 세월이 흐른 후다. 그때까지 그녀는 자식에게까지 자신의 발명가로서의 면모를 밝히지 않았는데, 그건 단지 엄마로서 있고 싶어서 였던 것 뿐 아니라 그 때의 경험이 줬던 씁쓸함 때문에 묻어두려던 마음 역시 있어서 그랬던 게 아닌가 싶다.

그녀는 스스로도 기왕에 만들어진 섹스심볼로서의 모습을 이용하거나 하면서 자신의 이미지를 더욱 망치기도 하였지만, 그런 모습으로 굳어지게 만든데는 당시 여성의 지위나 사회가 품고있던 기대와 편견이 큰 역할을 했다. 그것은 단지 그녀를 어떻게 비추느냐 하는 것 뿐 아니라, 때로는 그녀의 행동을 좌우하기도 했는데 그런 것들이 발명가로서의 그녀를 더욱 지우게 된 것 같아 안타깝기도 했다.

전기 만화로서 책은 헤디 라마라는 인물의 굵직한 이슈들을 꽤 잘 요약한 편이다. 그런데, 이 말은 다르게 얘기하면 생략된 것도 많다는 얘기다. 그 안에는 중요한 사실들도 포함되어 있는데, 그것들이 그녀에 대해 오해의 여지를 남긴다.1 또 일부는 서로 상충되는 내용이 실려있어 무엇이 맞는지 헷갈리게도 한다.2

그녀가 겪은 일들이 너무 여러가지다보니 책에서 그것들을 하나씩 조명하지는 않는데, 그게 그녀의 이야기를 깊게 들여다보기 보다는 마치 가십들을 흘려듣는 것처럼 단편적으로 스쳐지나게 만들기도 한다.

내용적인 면에서는 아쉬움도 많다는 얘기다.

선과 색감이 독특한 그림은 꽤 매력적이다. 작가는 인물 뿐 아니라 물건이나 심지어 컷 분할에도 외곽선을 거의 쓰지 않았는데, 이게 마치 애니메이션 스틸컷 같은 느낌이 들게 한다. 디테일도 꽤 잘 살린 편이다. 다만, 몇몇 물건들은 무엇인지 알아보기 어려운 것도 있어 아쉬움도 남는다.

  1. 영화 “엑스타시(Ecstasy, 1933)”를 마치 그녀가 원해서(원하는대로) 찍은 것 처럼 그린 게 대표적이다. 그밖에도 전쟁채권 홍보 활동에 참여한 경위 등 알려진 것과 다른 것들이 꽤 있다. 

  2. 1966년 절도 사건에 대해 ‘무죄 판결을 받았다’고 썼는데, 삽화의 기사에서는 ‘정신적으로 혼란한 상태였다’고 하며 마치 훔친게 사실인 것처럼 표현했다. 참고로, 위키백과에 따르면, ‘무죄 판결’을 받은 게 아니라 ‘기소 취하’가 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