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라이프(Life, 2017)는 식인 괴물을 다룬 2017년 판 에일리언 영화다.

다니엘 에스피노사 - 라이프

영화의 구상이나 이야기는 기본적으로 영화 에일리언(Alien, 1979)과 닮았다. 외계 생명체를 발견했는데 그게 하필이면 적대적인 식인 괴물이라는 점이나 도저히 당해낼 수 없다는 점도 그렇고, 미지의 괴물이라는 점을 이용한 스릴러 영화라는 점도 마찬가지다. 애초에 관계자가 에일리언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었다고 했다는데, 실제론 리메이크나 표절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유사하다.

에일리언과의 차이점이라면 우주라는 배경을 더 살렸다는 거다. 에일리언은 우주선에서 벌어지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폐쇄 공간이기만 하면 상관없다는 듯했는데, 라이프는 ISS라는 배경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며 이용한다. 당연히, 영화 그래비티(Gravity, 2013)를 연상케 하는 우주 유영 장면도 나온다.

영화 라이프 트레일러 中

요약하자면 그래비티를 토핑한 2017년 판 에일리언인 셈이다. 거기에 그동안 발전한 영화 기법과 CG를 버무려서 꽤 수준급 영상을 보여준다.

스포일러 리뷰에 들어가기 전에 말하자면, 엔딩 후 보너스 영상은 없다. 굳이 이를 위해 스텝롤을 끝까지 기다릴 필요는 없다.
영화의 주요 내용을 담고 있으니,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은 주의 바란다.

시작부터 에일리언의 그림자에 있던 라이프는, 대신 동면 중인 세포를 발견해 이를 키운다는 점이나 그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생명체로서의 실감을 더 했다. 그래서 초반은 스릴러 영화가 아닌 우주에서의 생명 실험 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조용하고 잔잔하다. 그래도 특수효과로 그린 생명체의 모습과 성장 과정은 꽤나 흥미롭고 그렇기에 나쁘지 않았다.

다만, 괴물 스릴러 영화로써는 썩 좋지 않은 전개였다. 미지의 생물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도 괴물 영화의 재미 중 하나인데, 라이프에서는 그걸 그냥 실험실에서 한마디 하는 걸로 끝내버리기 때문이다.

영화 라이프 트레일러 中

우주생물 ‘캘빈’을 일종의 세포 군집체로 설정한 것도 양날의 칼이다.

먼저 좋은 점은 초반에 캘빈의 현실감을 높여준다는 거다. 기본은 단세포 생명체라 각 세포가 단일 객체처럼 동작하면서도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돼 하나의 생물처럼 움직인다는 이 기본 설정 때문에 단일 세포를 배양한 것임에도 다세포와 같은 생명체로 키울 수 있었던 점도 설명이 되고, 전체가 근육이면서 뇌 역할을 한다는 것도 그럴듯하다. 단시간에 몸집을 불리는것 역시 기본은 단순한 단세포라는 설정덕에 넘어갈 수 있다.

이는 또한 캘빈이 괴수로서 얼마나 대단할지를 짐작게 해주는 역할도 한다. 영양 흡수를 통해 세포 수를 늘리고 커지면 그에 비례해 힘과 지능까지 좋아지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면 약점을 드러나 공략이 가능해지는 기존 괴물들과는 다른 거다. 초반에 작은 캘빈의 힘과 지능을 선보여 이 괴물의 능력이 어느 정도일지 짐작할만한 기준점을 보여준 것도 좋았다. 덕분에 관객은 이후 각 장면을 볼 때 자란 캘빈의 크기를 통해 그의 힘과 지능을 자연스레 예상할 수 있게 됐다.

나쁜 점은 어설픈 설정이 앞서 구축해온 캘빈의 현실감을 죽인다는 거다. 세포 수를 늘림으로써 성장하는 생물인데도 분열을 통한 증식을 하지 않고 단일 개체로만 있는 것도 이상하고, 머리처럼 불필요한 기관을 만드는 것도 황당하며, 뼈처럼 힘을 전달하는 구조가 없는 단순한 세포 덩어리들로 저렇게까지 힘을 내는 것도 이해하기 어렵다.

지능 생물로서의 면모 역시 실망스럽다. 상당히 자란 후에도 문 앞에선 무력하기만 하기 때문이다. 처음에야 구조와 방법을 모르니 그럴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렇게까지 많이 봤으면 학습을 해야 할 것 아닌가. 그런데 학습은커녕 시도조차 하지 않는 걸 보면 이게 진짜 지능 생물이 맞나 의심스러울 정도다. 아직 작을 때 조차 인큐베이터에서 탈출하는 데 필요한 도구를 만들어 사용했었는데, 그 영민함이 어디로 간 건지 모르겠다.

영화 라이프 트레일러 中

반면에 우주복의 냉각수가 내부로 흘러들게 만드는 등 쓸데없는 데서는 과하게 지능적이다. 대체 막 태어난 외계 생명체가 인간들이 만든 우주복의 구조를 어떻게 안단 말인가.1 레버를 돌리기만 하면 되는 문조차 열지 못하는 녀석이 말이다. 이렇게 작가가 원할 때만 지능적으로 행동하는 모습은 이야기에 몰입하지 못하게 만든다. 머릿속에 계속 의문부호가 뜨게 하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우주에서 맨몸으로 버틴다든가, 기본적으로는 지구 생명체와 크게 다르지 않은 탄소 기반 생명체라면서도 독성이 있는 냉각수를 성장을 위해 먹어치운다든가 하는 것도 이상하다.2

공포를 조장하는 것도 영상과 음향을 이용한 단순한 서프라이즈에 의존한다. 몸 전체가 소화기관이기도 한 캘빈이 인간을 안쪽부터 먹어치우는 장면은 과연 R 등급3이다 싶을 만큼 끔찍하고 사실적이나 스릴을 느끼게 하는 것은 아니었다.

영화 라이프 트레일러 中

심지어 후반에는 스릴을 느낄만한 요소마저 없다. 그냥 막강한 생물로서의 능력 자체에 등장인물들이 압도되어 아무것도 못 하는 것처럼 보인다. 거대 괴수물에서 큰 발에 짓밟히는 사람들처럼 말이다. 여기에 이르러서는 점점 깎여나가던 캘빈의 현실감도 이제 완전히 사라져서, 그냥 판타지 속 생물을 보는 것만 같다. 인간들은 여전히 현실 우주 공간에 있는데, 거기에 난데없이 판타지 속 생명체가 차원 이동 해 와 역 이고깽을 펼치는 느낌이랄까. 이 둘은 끝내 융화되지 않아 어색한 붕 뜸을 느끼게 한다. 초반에 현실감을 높였던 게 오히려 후반에 악영향을 끼치게 된 셈이다.

이렇다 보니 미지의 생명체에 대한 스릴과 공포는 없고4, 그런 와중에도 답 없는 짓거리만 하는 인간들의 행태에 한숨만 나올 뿐이다. 뭔가 주제의식을 나타내려는 듯 어거지로 넣은듯한 대사도 겉돌기만 해서 와 닿기는커녕 어이가 없었다. 촉수 괴물의 자연 생존 의지라니, 이 무슨 기생수 짝퉁도 아니고. 이 대사가 더욱 허망한 것은 이를 내뱉는 당사자가 정작 인간의 생존 의지는 무시하며 오히려 위협하는 작태를 보이기 때문이다. 지 하고 싶은 것을 정당화하려고 억지로 갖다 붙인 논리라는 말이다. 이딴 걸 주제의식이라고 들이밀다니. (기생수와는 다르다! 기생수와는!)

영화 라이프 트레일러 中

스릴도 없고 주제의식도 없으며, 이야기도 없어서 후반에는 정말 지루하게 결말만을 기다렸다. 그런데, 결말 부의 반전마저도 너무 티가 나서 헛웃음이 나오더라. 얼마나 허술한지 마지막을 준비할 때부터 너무 뻔했다. 그래서 설마 그러진 않길 바랐는데, 그냥 그러더라고.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곱게나 죽을 것이지. 다른 사람의 일일 때는 임무가 어떻고 안전이 어떻고 서약이 어떻고 의무가 어떻고 하더니만. 그냥, 후속작을 원해서 그렇게 한 것 같은 느낌밖에 안 들더라.

그러나, 후속작을 원했다면 차라리 우주로 날려 보내는 게 더 낫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훗날 그걸 우연히 발견하게 된다든가, 혹은 어떻게든 이용해 먹으려고 찾으러 간다든가 하는 얘기가 나올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이미 감당할 수 없는 괴물을 먹을 것까지 많은 장소에 떨어쳤으니, 다음에 발견할 때는 킹콩에 버금가는 거대 괴수가 되어 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거기에 영화 내내 보여줬던 단단함까지 생각하면, 인간이 대체 이걸 어쩔 수 있겠는가. 지구가 제2의 화성이 되는 걸 구경하기밖에 더하랴. 그건 전혀 재미도 스릴도 없을 것 같다.

영화 라이프 트레일러 中

이 영화는 등장인물들의 캐릭터 묘사마저도 안 좋다. 대표적인 예가 데이빗 조던(제이크 질런홀 분(扮))이다. 그나마 보여준 반전 의식과 인간에 대한 염증도 사실 딱히 별 의미가 없었고, 결말에 다다라서 보이는 초반과는 다른 행동도 어떤 계기로 변화했기에 그러는 것이 아니라서 얘가 왜 이러나 싶기만 하다. 굳이 따지자면, 조던은 이 영화의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다. 작가가 뭔가를 보여주거나 어떤 전개로 진행되는 걸 원하는 데 딱히 쓸만한 개연성이나 인물이 없을 때 등장해서 쓱 일을 벌이는 로봇과 같다. 로리 때도 그렇고, 결말 때도 그렇다. 그래서 극의 등장인물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장치에 가깝다. 만약, 마지막 행동이 인간에 대한 지독한 염증 때문에 인류 멸망을 위해 계획해서 한 것이었다면 차라리 의미 있는 인물이었겠다.

영화 라이프 트레일러 中

비록 연기와 기본 설정은 썩 나쁘지 않았고 연출이나 CG도 나름 볼만하나 상세 설정과 후반 전개, 그리고 마무리는 허술해서 그냥 그저 그런 볼거리 이상은 아니었다.

게다가 스릴러임에도 후반엔 지루해서 끝 즈음에 라이언 레이놀즈(로리 애덤스 역(役))의 시체가 나왔을 땐 만약 그가 되살아나 데드풀식 조크를 날린다면 차라리 웃기겠단 생각도 들더라.

영화 데드풀 中

설정도 이야기도 더 허술한 일명 삼류 영화도 특유의 유쾌함으로 영화 자체는 즐길 수 있음을 생각하면, 결국 이쪽도 저쪽도 아닌 어설픔이 이 영화가 별로인 이유가 아닐까 싶다.

  1. 외부에서 압박으로 냉각수를 터트렸는데, 그게 우주복 밖으로 새나가 쪄죽게 되는 게 아니라 우주복 내부로 새어 들어와 질식하게 된다는 것도 우습다. 

  2. 사실 이 장면은 애초에 밀폐된 구조로 되어있을 냉각수통 안으로 들어간 것부터 이상하다. 캘빈은 영화 내내 문 종류에 무력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들어갈 수 있으려면 냉각수통이 외부로 뚫려 있어야 하는데, 냉각수를 그런 질질 흘리는 구조에 담을 리가 없지 않나. 

  3. MPAA 등급 체계의 하나로 ‘17세 이상 관람가’를 의미한다. 위로는 18세 이상만 가능한 NC-17, 아래로는 13세 이상이면 가능한 PG-13이 있다. 한국에선 KMRB 등급에 따라 ‘15세 이상 관람가’로 책정되었는데, R 등급이 15세 이상 관람가(15~17세)의 끝에 걸리기 때문인 듯하다. 근데, 범위가 15세부터로 너무 넓어서 영화에 맞는 등급은 아닌 것 같다. 

  4. 사실 초반에 이미 캘빈의 특징에 대해 대사로 설명을 했기 때문에 이미 ‘미지의 생명체’는 아니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