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평연간의 격정(和平年間之激情)’은 북송 왕조 창업 백여년 쯤의 어느 시점을 배경으로 한 시대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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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송나라(조송)의 가상 황제 ‘조융’와 그 주변 사람을 주인공으로 한 시대소설이면서 또한 퀴어 로맨스를 그린 BL소설이기도 하다.

이 양 측면은 한쪽이 다른쪽에 영향을 주고, 그것에서 다시 되돌려받는 식으로 영향을 받으면서 나름 밸런스를 잡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는 시대소설로서의 측면이 훨씬 비중이 높다. 비록 그럴때에도 황제는 다른 측면을 생각하고, 행동 역시 그로인해 결정되거나 바뀌게 되는 것들이 있기도 하지만, 단지 그런 계기같은 것을 만들어주기만 할 뿐 그 자체가 그리 중요하게 다가오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런 감상은 단순히 퀴어 로맨스 부분이 그만큼 분량이 적어서 그럴 뿐 아니라, 좀처럼 이해하거나 공감할 수 없어서 그런 것이기도 하다.

주요 내용을 포함하고 있으므로 주의 바란다.

황제가 그런 성향을 보인다는 것 자체는, 동성애가 그 시대에 소위 오락거리처럼 흔했다는 걸 생각하면 전혀 이상한 것이 아니다.

그가 개인적으로 있을 때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는 것도 그의 성정체성이 그런데도 평소에 전혀 내색을 하지 않으려 억누르느라 생긴 반동으로 인한 것이라 하면 못 받아들일 것 없다.

문제는 그의 연인역인 ‘유가경’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거다. 그는 자유롭고, 무엇보다 분명한 이성애자다. 오죽하면 황제란 걸 잊어먹고 몇차례 난투까지 벌일 정도다.

그런 그가 황제에게 그런 말과 행동, 생각까지 하게 되는 것은 좀처럼 이해하기 어렵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때에따라 변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이야기 진행을 위한 트리거와 같다. 가끔씩 등장해 가장 시기 적절한 일을 벌이며 황제와 ‘추신’이 기꺼이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게 만든다. 그렇게 다른 인물들을 특정한 방향으로 치닫게 만드는데만 모든 의미가 있는 듯한 그는 마치 일종의 무대장치와 같다.

그가 그렇게 된 것을 전혀 설명치 않으려 했던 것은 아니다. 공간적으로 또 사회적으로 격리함으로써 그의 정신이 압박받도록 하는 ‘밀원’이란 장치가 그것이다. 그러나, 단지 그것만으로는 그가 마땅히 그렇게 되어야만 하는 당위성을 느끼기는 어렵다.

몽롱해지게 만드는 향을 피운다든가, 약을 먹여서 그렇게 되었다든가, 그러나 그걸 오래 사용하면서 점차 내성도 생기고 효능에 상극인 음식(예를 들면, 술같은 것)을 취하게 되면서 제정신을 차리는 때가 있기도 해서, 결론적으로는 미친것처럼 오락가락하게 되었다고 했다면 또 모르겠다.

이런식의 보충 논리가 따로 없다보니, 유가경은 끝까지 좀 사람같게 느껴지지가 않는다.

로맨스의 주인공 중 하나에게 공감할 수 없는 것은 자연히 그를 통해 보여주는 퀴어 로맨스도 썩 괜찮은 것으로 여길 수 없게 한다.

반면에 다른 한 축인 시대소설로서의 면모는 꽤나 훌륭하다. 시대를 충분히 느낄 수 있게 인물과 사회를 보여주기도 하고, 등장인물들이 갖고있는 정신적인 나약함이나 강박, 집착같은 면들이 이들의 역사를 어떻게 만들어가게 하는지도 잘 그려냈기 때문이다. 궁중극으로서는 상당히 흥미롭고 재미도 괜찮다는 말이다.

그렇기에 다른 한쪽, 퀴어 로맨스 부분은 더욱 아쉽게 느껴진다.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고 작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