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좌의 봄’은 영조 4년 소론 강경파와 남인 일부가 일으켰던 이인좌의 난을 새롭게 그린 소설이다.

표지

무신년에 일어났기에 무신란(戊申亂)이라고도 하고, 경상도(영남)가 주요 지역이었기에 영남란(嶺南亂) ‘이인좌의 난(李麟佐亂)’은, 과격 소론파였던 이인좌를 중심으로 왕을 바꾸기위해 일어났던 난이다.

당시의 주요 사건 중 하나라서 이름만큼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하지만 실제로 그 자세한 내막은 아는 사람이 별로 없는데, 그건 이 난이 겨우 6일만에 끝난 짧은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그뿐이랴. 이 사건에 어떤 의의가 있는지도 재평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도 ‘혁명’이 아니라 ‘난’이라고 하는 거다.

주요 내용을 포함하고 있으므로 주의 바란다.

작가는 그건에 의문을 재기하면서 이 소설을 연다. 이긴 사람에 의해서 쓰여진 역사서가 아니라 진 사람들의 입장에서 기술함으로써 무신란을 다시 보려고 한 것이다.

그걸 위해 당시 이들이 주장했던 왕 교체의 필요성이라던가 더 나아가 어떤 세상을 만들고 싶어했는지를 여러번 얘기한다. 이것은 이인좌가 난을 일으켰을 때 실제로 자신이 부리던 일꾼이나 노비 등과 함께 했었다는 점에 주목해 작가가 창작해낸 것으로 보이는데, 그게 그들의 대의를 좀 더 그럴듯하게 보이게 만들어준다.

하지만, 그 대의를 뒷받침하는 주장은 말 그대로 주장일 뿐이거나 풍문에 의거한게 많아 쉬 납득이가지는 않았고, 그렇게 하여 바꾸고자 하는 세상도 구체적인 내용이나 방향이 있다기보다 이상적인 주장뿐인 느낌이 있어 쉽게 공감하거나 몰입하기는 어려웠다. 책에서도 이인좌가 처음부터 그러한 마음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입신양명에 실패한 후 거사를 생각하게 된 것처럼 그려 더욱 그러하였다.

이러한 생각이 드는 것은 그가 왜 새로운 세상을 꿈꾸게 되었는지, 그 배경이나 이유에 대해서 별로 다루지 않기 때문이다. 심지어 천주교와의 연결성도 없다. 그래서 좀 과한 해석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오히려 권력 투쟁의 하나로 거사를 일으킨 거라는게 더 설득력 있다는 얘기다.

한국은 민간이 주도한 혁명도 거의 없고, 성공한 적도 없는 나라다. 있는 것이라곤 군 권력자의 쿠테타 뿐 아닌가. 그게 개인적으로는 참 아쉬운 역사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작가의 이러한 해석 자체는 반갑기는 했으나, 아쉽게도 그걸 썩 마뜩하게 그리내지는 못했다. 어떠면 뒷받침할만한 사료가 그만큼 없었기 때문일까. 아쉬움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