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일리스 드 케랑갈(Maylis De Kerangal)’의 ‘살아 있는 자를 수선하기(Réparer les vivants / The Heart)’는 장기기증과 이식을 소재로 한 의학 소설이다.

표지

특정 분야를 다룬 소설은 자칫 부담스러울 수 있다. 전문 지식에 대해 다루기 때문에, 제아무리 인간 드라마가 섞여 있다고 하더라도, 어렵고 지루해지기 쉬워서다.

이 책은 그런 점에서는 완급 조절을 잘했다. 전문 지식에 대해서 다루며 관련 용어도 여럿 나오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그것 때문에 읽던 걸 멈춰야 할 정도로 크게 방해되거나 하진 않는다. 의학적인 내용을 소재로 했고 그 과정도 꽤 신경 써서 묘사했으나 그것 자체에만 집중하기보다는 거기에 얽힌 인간들의 이야기에 더 신경을 썼다.

장기이식에는 다양한 인간들이 얽혀있다. 먼저 장기를 제공하는 자와 받는 자가 있고, 그들의 가족과 연인이 있으며, 그들에게 이식 수술을 하는 의사와 그들을 돕는 간호사가 있고, 마지막으로 이들을 연결해주는 코디네이터가 있다. 이들에겐 모두 각자의 삶과 이야기가 있는데, 책은 이걸 장기이식 과정을 따라가며 하나씩 풀어낸다.

어떻게 해야 할까, 니콜라이? 죽은 자들은 땅에 묻고 살아 있는 자들은 고쳐야지.1

그렇게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기 때문인지 장기기증과 이식에 대해 어느 한쪽의 입장이나 주장을 정론으로 내세우지도 않는다. 대신 각자에겐 각자의 입장과 생각이 있음을 보여준다.

물론, 기본적으로는 긍정적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긍정적인 면만을 부각하지는 않으며 그 외 이슈들도 대부분 언급한다. 이식용 장기를 목적으로 한 살인이나 방조 같은 기증자 입장에서의 불안 문제도 그렇고, 어디 서부터를 죽은 것으로 볼 것이냐 하는 원론적인 문제, 장기기증 의사의 추정 원칙에 대한 법적인 면2은 물론 남겨진 사람들의 거부감 같은 것도 함께 얘기한다.

죽은 자를 이용해 죽을 자를 살린다는 것은, 즉 죽은 자의 부품으로 살아 있는 자를 수선한다는 것은 다분히 재활용을 떠올리게 한다. 심각한 장기 손상으로 스스로 회복할 수 없는 사람에겐 유일한 희망이기도 하고, 육체 하나를 이용해 여럿을 살릴 수 있는 데다, 어차피 놔두면 썩어 없어지리라는 것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장기이식은 분명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것이다. 하지만, 인간을 일종의 자원으로 보는 이런 시각은 한편으론 씁쓸하기도 하다.

이 미묘한 거부감은 장기기증이 기증자의 죽음을 전제로 하기에 생기는 것이라고 본다.3 장기이식의 일종이면서도 죽음을 전제로 하지는 않는 신장이식이나 골수이식, 헌혈 등에 대해서는 기증에 대해 그렇게 큰 거부감이 없는 게 그 증거다. 이것은 다시 말해 아무리 시간이 흘러 사회 인식이 바뀌어도 장기기증에 대한 근본적인 거부감은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걸 증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니 만약 실물을 대신할 수 있는 인공 장기가 만들어진다면 이런 인간으로부터의 장기 이식은 사라지게 될지도 모른다. 기증에 대한 거부감이나, 이식할 장기의 수급 면에서도 인공 장기가 더 낫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게 곧 올 것은 아니기에 그 전까지는 계속 고민할 수밖에 없다. 자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서 말이다.

책을 통해 장기기증과 장기이식 절차에 대해서 알아보는 것도 유익했고, 거기에 얽힌 인간들의 이야기를 보면서 삶과 죽음에 걸쳐있는 현실적이면서도 철학적인 문제에 대해서 생각해보는것도 좋았다.

다만, 아쉬운 것은 번역이 썩 좋지 않다는 거다. 내용을 떠나서 형식이 그렇다. 처음 보면 특이한 걸 넘어서 이상하고 그릇되어 보일 정도다. 추가 서술, 장면 전환 등을 괄호로 나눈 것도 이상하고, 보통의 서술에서부터 단순한 단어의 나열까지 왔다 갔다 하는 것도 그렇다. 책에 대한 평 중에는 작가의 ‘시적인 문체’가 돋보인다는 것도 있더라만, 아쉽게도 한국어판에서는 그런 것을 느끼기 어렵다. 그저, 조금은 짜증스럽기도 하면서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기만 하다. 아무리 프랑스어가 한국어와 크게 달라서 어쩔 수 없었다지만, 그래도 이건 좀 아니지 않나.

  1. 안톤 체호프(Anton Chekhov)의 희곡 플라토노프(Platonov)에서 보이니체프와 트릴레츠키 사이에서 오간 대화의 한 토막. 본문 158p에서 가져옴. 

  2. 장기기증 결정 원칙은 나라마다 다르다. 한국은 당사자가 생전에 장기 기증을 약속했거나, 유족이 받아들인 경우에만 장기기증이 이뤄진다. 책(152p)에 의하면 프랑스에서는 반대로 거부자로 등록하지 않은 경우 암묵적으로 기증에 동의한 것으로 보는 듯하다. 

  3. 여기서 장기기증이란 더 정확하게는 ‘뇌사 시 장기기증’을 일컫는 것으로, 살아있지만 뇌가 기능하지 않아 ‘죽은 것으로 간주’하는 상태에서 이뤄지는 것을 말한다. 보통 장기기증이라 하면 이를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