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언 반스(Delphine Perret)’의 ‘연애의 기억(The Only Story)’은 한 사람의 ‘사랑의 기록’을 담은 소설이다.

표지

처음 봤을 때부터 평범한 사랑 이야기는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작가가 ‘줄리언 반스’기 때문이다. 편견일지도 모르지만, 이 작가라면 뭔가 다른게 있을 거라는 느낌이 컸다. 그리고 그건 꽤 잘 들어맞았다.

얼핏 보기엔 마치 흔한 연애 소설, 누구나 공감할만한 사랑 이야기를 담은 것 같은 이 소설은, 막상 펼쳐보면 그런 이야기라고 하긴 찝찝한 뒷맛을 남기는 그런 이야기를 담고있다. 이야기가 안좋다거나 하는 그런 이야기가 아니다. 단순히 ‘사랑 이야기’라고는 할 수 없는 복잡 미묘한 감정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만 표현하는 건 자칫 엉뚱한 얘기를 하는 것 같은 찝찝함을 준다는 얘기다.

주인공 폴의 관점에서 쓴 이 소설은 주로 그와 그가 사랑에 빠진 한 여인의 이야기를 담고있는데, 시작부터 평범한 로맨스는 아님을 드러낸다. 애초에 이 소설은 폴의 ‘기억’에 의존한 기록임을 전재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부분이 비어있고, 그래서 설명되지 않는 점도 많으며, 그게 이 이야기를 미처 다 채워넣지 못한 미완의 소설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기대한 사람이라면 실망할 수도 있는 부분이다. 하긴 줄리언 반스의 이야기를 보면서 얼마나 그런 이야기를 기대하겠냐만은.

대신 소설은 기억과 감정, 사랑과 삶 등에 대한 여러가지 이야기들을 풀어놓는다. 이는 서사에 빈 곳이 있는 것과 함께 여러가지를 생각해보게 만든다. 그게 이 소설을 좀 어렵게 만든다.

여기에는 번역도 한 몫 하는데, 마치 직역한 듯 불친절한 번역이 읽기 썩 유쾌하지 않기 때문이다. 번역 그 자체도 그렇고, 문장의 배열도 그렇다. 작가가 언어 유희를 많이 사용했기에 더 그렇다. 역자는 그걸 일단 단어 그대로 번역한 후 주석을 다는 방식으로 처리했는데, 그게 언어 유희적인 측면을 모두 죽여버려서 주인공들이 나누는 ‘유쾌한 대화’라는 측면을 거의 느낄 수 없게 만든다. 작가가 적극적으로 활용한 지방색도 접점이 없는 나로서는 낯설음을 느끼게 했다.

이야기 면에서 이 소설은 일반적인 연애 소설의 공식을 많이 벗어나기도 했다. 그렇다고 ‘엄청나게 파격적이다’고 할 것 까지는 아니나, 그래도 꽤 신선함을 느끼게 한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소설로서 봤을 때 그럴 뿐, 막상 따져보면 상당히 현실적인 것이어서 묘하게 소름이 돋기도 했다. 나도 결국엔 그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게한다.

마치 자서전처럼 기록된 이 소설은 서술 시점도 1인칭에서 2인칭, 그리고 3인칭을 오가는데, 유독 2인칭 서술이 붕 뜬 느낌이 들어 어색하기도 했지만, 주인공의 심정이나 변화를 보여주는 듯한 이런 서술 방식도 꽤 신선했다.

한국어판 제목 ‘연애의 기억’은 원제 ‘The Only Story’와는 의미나 뉘앙스가 꽤 다르다. 해석하자면 ‘유일한 이야기’ 정도다. 왜 이런 제목일지 의아하기도 하면서도, 사랑 이야기라는 것의 속성을 생각하며 곱씹어보면 조금 고개를 끄덕이게도 된다. 그것은 누구에게든 있으며 얼핏 유사해보이기도 하지만, 막상 같은 것은 하나도 없으며, 각자에 있어서만 의미와 진실이 있는 하나뿐인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꽤 잘 지은 제목 같기도 하다. 수전의 대사에서 온 것이기도 한 이 제목은 꽤 의미심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