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번연(Jhon Bunyan)’의 ‘천로역정(The Pilgrim’s Progress / 天路歷程)’은 크리스천이 천국에 이르는 여정을 담은 순례기다.

표지

무려 1678년에 처음 나온 기독교 고전인 이 책은 저자가 꿈을 통해 보았다는 계시적인 형태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때론 본문에 바이블의 구절을 직접 인용할만큼 바이블 내용을 잘 따른 것 때문인지 이 후 바이블 다음으로 가장 많이 읽힐만큼 성공했는데, 그건 또한 이 책이 이야기로서도 꽤 흥미롭게 잘 구성된 소설이기 때문이다.

현실이 아닌 비유적인 표현과 내용을 담고 있는 이 책은 조금은 신화와도 닮은 면이 있다. 등장 인물의 면면만 봐도 그렇다. 책에는 믿음, 소망같은 말을 의인화한 인물들이 가득 등장하는데 이것은 가이아, 카오스 등 자연현상을 의인화 했던 신화와 유사한 면이 많다. 그래서 조금은 기독교의 신화적인 소설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조금 어색하게 보이기도 한다. 신화가 완전한 의인화를 통해 그들만의 새로운 이야기를 펼치는 식으로 자리를 잡은데 반해, 이 소설은 반은 그러한 반면 반은 비유와 상징으로서의 표현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야기 자체보다는 그 안에 숨은 의미가 더 중요하다는 점에서 소설로서의 재미는 좀 떨어진다고도 할 수도 있다.

의도 자체를 강하게 내비치기 위해선지 아니면 당시의 시대상이 반영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무리하거나 이상한 것들도 꽤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 크리스천이 가족들을 버리고 혼자서만 천국을 향해 간다는 것이나, 천주교 교황을 순례자들을 잡아먹던 힘빠진 거인으로 등장시킨 것도 그렇고, 2부에서는 크리스천의 잘못을 변호하며 ‘가족들이 끝끝내 거부했었다’고 말을 바꾸기도 한다. 이런 것들이, 기독교 서적이라는 점을 빼고 소설로서 보았을 때, 좀 완성도가 떨어져 보이게 한다.

번역에서는 명사 번역이 좀 아쉽다. 익숙한 이름을 그대로 사용한 듯한데, 유독 주인공인 크리스천과 크리스티나만 그대로 두고 다른 인문들은 모두 한자어인 합법, 천박 등을 썼기에 꽤 이질감이 있다.

루이스 레드 삼형제의 매력적인 삽화는 정말 마음에 들었지만, 너무 작게 실려 제대로 보기 어려운 것도 있고, 특히 2부의 삽화는 너무 질이 떨어졌기에 역시 아쉬움이 남았다.

그래도 천로역정의 한국어 판본 중에서는 꽤 추천할만한데, 전체적인 번역이나 편집이 양호한 편이고, 무엇보다 대게는 생략하는 2부까지 충실하게 담았기 때문이다. 기독교도라면 꼭 한번은 읽어보길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