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레이스 맥코이(Horace McCoy)’의 ‘그들은 말을 쏘았다(They Shoot Horses, Don’t They?)’는 우스꽝 스러운 대회를 통해 삶의 허무를 그린 소설이다.

표지

1930년대 미국 대공황 시절엔 지금으로선 생각하기 힘든 기묘한 일들이 많이 벌어졌다. 소설의 소재인 ‘댄스 마라톤(Dance marathon)’도 그 하나다. 이 대회는 1시간 50분 동안 서서 계속해서 몸을 움직이는 소위 ‘댄스’를 하고, 그 후 주어지는 10분동안에 먹고 자고 싸면서 몸을 추스리는 일을 반복하는 일종의 인내 게임이다.

꼭 격하게 몸을 움직일 필요는 없다고 해서 쉬워 보일 것 같지만 잠깐의 휴식시간을 제외하면 전혀 쉴 수 없기 때문에 쓰러져버리는 사람이 나올 정도로 극한까지 사람을 몰아부치는 고문과 같은 대회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이 대회에 참가하는 이유는 뭘까. 수차례 파트너를 바꿔가면서 재도전하고, 심지어 출산을 앞두고 있어 크게 부풀어오른 배를 감싸않은채로도 그러는 것은 그만큼 당시가 먹고 살기조차 막막했던 시기기 때문이다. 주최측에서는 대회 참가자들에게 우승상금 뿐 아니라 숙식도 제공했는데, 그게 사람들을 끌어들인거다.

큰 빈부격차 속에서 부자들의 유치를 위해 치러진 대회가 진행되면서, 참가자들은 그저 댄스가 아닌 힘겨운 경주를 벌이는가 하면 볼거리 제공을 위해 결혼식까지 올리기도 한다. 이런 일들은 거의 무작위로 벌어지기 때문에 소설은 끝까지 종잡을 수가 없다.

이야기를 풀어내는 솜씨는 꽤 좋아서 한번 읽으면 내리 읽어내려가게 한다. 사형죄의 판결을 내리는 것으로 시작해서 그간에 벌어진 일들을 회상하는 식으로 얘기하기 때문에 결말을 알고 보는 것에 가까운데도 앞서의 특징(종잡을 수 없다) 때문에 꽤나 흥미롭기도 하다.

이런 감상은 내가 미국의 당시를 잘 알거나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나온 것이다. 그래서 소설 속에서 벌어지는 대회, 인간들의 이야기 역시 실제로는 암울하기 그지 없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일종의 소동극처럼 가볍게 보이기도 했다.1

시대상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이들이 당도하게 되는 우울과 허무가 잘 와닿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것이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점차 진해지는 것이 아니라 그저 마지막에서야 마침내 꺼내 보인 것에 가까워서 더 그렇다. 그래서 조금은 뜬금없다.

왜 그 얘기를 받아들였느냐도 충분히 설득력있게 보여주지는 못한다. 대사로도 나오는 제목의 문장(그들은 말을 쐈지, 안 그래?2) 역시 별 공감대가 없다. 만약 이게 그들이 빠져있는 감정을 비꼬려고 일부러 그런 것이라면 대단히 성공적인 셈이다.

소설 속 인간들의 행태는 사회 비판적인 면이 많은데, 그건 지금에 대입해봐도 꽤나 유의미하다. 인간들은 여전히 그때와 별 다를바 없다.

  1. 미국 사람이라면 이런 감상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6.25나 일제강점기를 그린 소설을 보면서 ‘한바탕의 소동’처럼 느끼는 한국 사람은 없는 것처럼 말이다. 이래서 문화가 주요한거다. 

  2. 한국어판은 이게 제목에 안어울린다고 생각했는지 좀 (많이) 바꿨다. 책 표지를 덮을 정도로 길고 평문인 라이트 노벨들의 제목을 생각하면 이정도를 굳이 바꿀 필요가 있었나 싶긴 하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