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미르 후스로 델라비(Amīr Khusrow Dehlavī)’ 원작의 ‘세렌디피티의 왕자들(Travels and Adventures of Three Princes of Serendip)’은 첫눈에 보고 기대했던 딱 그런 옛스런 이야기 책이다.1

표지

중동이라는 지역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이 책은 전체적으로 아라비안 나이트 느낌이 물씬 난다. 옛날 스타일의 이야기는 현대의 소설과 비교하면 비록 기교나 긴장감, 그리고 현실성 등은 좀 떨어지지만 그래서 더 신비롭기도 해 나름의 매력을 갖고있기도 하다.

세밀한 묘사까지는 하지 않기 때문에 빈 곳이 많은데2, 신기하게도 그 때문에 딱히 이야기가 모자라 보이지도 않다. 오히려 그 뒤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를 상상하게 만들어 부풀어 오르기도 하는데, 세밀하게 묘사한 현대의 소설들이 오히려 사소한 것 하나 때문에 아쉬움을 남기기도 하는 걸 생각하면 참 신기하다.

이런 특징들이 소설을 꾸준히 흥미롭고 재미있게 읽게 만들며, 기상천외하게 튀는 이야기도 다음엔 어떻게 이어질지 궁금하게 만든다.

소위 ‘선인들의 지혜’라는 것을 담고 있는 것도 옛 이야기 답다. 다만 왕자들의 모험과 이야기꾼들의 이야기에서 보여주는 지혜들은 옛 이야기라서 그런지 논리적이라기보다는 말장난 같은 면이 있다. 누구나 공감하고 동의하거나 그 기발함에 감탄할만한 한 것은 아니라는 거다. 시대도 다르고 지역도 다르다보니 아무래도 문화차이를 보이는 게 아닌가 싶다.

앞서 이 책을 ‘아라비안 나이트’ 같다고 했는데, 그건 단지 분위기만 그런 게 아니라 형식 면에서도 어느 정도 그렇다. 이야기의 일부에 다른 이야기가 들어있는 액자식 구성을 띄고 있기 때문이다. 왕에 의해 벌어진 일을 수습하기 위해 시작 된 것이라던가, 그 안에 묘하게 왕을 꼬집는 내용이 있는 것도 그렇고, 그를 통해 종국엔 갈등이 원활하게 해소된다는 내용 역시 꽤나 닮아있다.

다만 그 끝이 썩 마음에 들지만은 않았는데, 이야기가 단지 그 뿐으로 끝나버리기 때문이다. 기껏 이야기꾼들의 이야기도 왕에게 교훈적이라 할만 했는데, (비록 뻔한 전개지만) 좀 더 현실에 영향을 주었으면 어땠을까 싶었다.

그래도 어쨌든 재미있다. 게다가 책을 보고 내가 기대했던 딱 그런 책이어서 개인적인 만족감도 높았다.

다만, 소설 외적으로는 썩 그렇지 않았는데, 너무 뻔한 속셈들이 묻어있기 때문이다. BTS를 언급하는 게 그렇다. 굳이 소설과 별 상관도 없는데 구태여 그러는 건 어떻게든 유명세를 업어보겠다는 질낮은 짓 아닌가.

제목을 ‘세렌디피티의 왕자들’이라고 해논 것도 그렇다. 원저대로 페르시아식 지명인 ‘세린딥(Serendip)’이나 그 원래 의미인 ‘실론(Seylon)’을 쓰던가, 좀 무리여도 현재 국명인 ‘스리랑카(Sri Lanka)’까지는 그래도 좀 봐줄만 했겠다. 이것들은 그래도 모두 같은 지역을 일컫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것들을 모두 버리고 뜻은 물론 형태도 많이 변질된 ‘세렌디피티’를 쓴 건 대체 왠지 이해하기 어렵다.

소설이 세렌디피티(serendipity)의 어원인걸 절로 알게 할만한 이야기인 것도 아니어서 더 그렇다. 막말로 왕자들은 부왕이 처음부터 목적을 갖고 외국에 보낸 것 아니던가. 그들이 그곳에서 보인 지혜들도 ‘미처 몰랐던 것들을 항상 우연하게 발견’한 게 아니라, 놓치기 쉬운 것도 세심하게 관찰하고 그것들을 상황에 맞추어 적절하게 분석해서 얻은 것이었다. 어떻게 보면 세렌디티피란 말은 그들의 지혜와 성취를 우연한 것으로 곡해하고 낮잡아 봐서 생긴 차별적인 용어인 셈이다.

그러니 딱히 이렇게까지 대단하게 부각할 가치가 있었는지 더 모르겠다. 하더래도 소설이 끝난 뒤에 저자의 말을 넣으면서 간단하게 언급 정도만 하고 넘어가면 족하지 않았을까. 그걸 지나치게 밀어대니 좀 눈꼴시다.

  1. 영어 제목은 보통 ‘The Three Princes of Serendip’으로 알려져있다. 

  2. 이건 이 소설이 일종의 동화라서 그런 것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