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을 만드는 사람’은 검은 말을 타고 파타고니아 평원을 누비며 바람을 불게 하는 남자 ‘웨나’와 그를 쫓는 가우초 ‘네레오 코르소’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이다.

표지

책 속에서 네레오가 평생에 걸쳐 찾아다니는 ‘웨나’는 바람을 만드는 ‘사람’이다. 신이 아니다. 때문에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단지 바람을 불게 만드는 것뿐, 영생을 주거나 상처를 치료하기는커녕 마음의 안식을 주지도 못한다. 그런데도 왜 네레오가 그를 쫓는지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바람이란 어떻게 생기는 것인지 이미 과학적으로 밝혀졌기에, 다시 말해 웨나란 존재하지 않음이 너무도 확실하기에 더욱 그렇다.

그렇다. 이 소설의 배경은 양치고 우유 짜는 중세 시대가 아니다. 이미 과학이 널리 퍼진 근현대다. 이런 시대에 과학도 종교도 아닌 신화를 믿고 그 실체를 찾아다니는 네레오는 확실히 좀 이상해 보인다.

소설은 그런 네레오의 여정을 그리며 그가 보고 겪은 인간들의 이야기를 에피소드 방식으로 풀어놓는다. 이동하면서 에피소드를 풀어놓는다는 점은 어린 왕자나 은하철도 999와 닮았다. 네레오는 각 에피소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거나 거기에 관련된 자들로부터 큰 변화를 겪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들을 그저 담담하게 담아냄으로써 다양한 인간과 사회의 모습들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대부분엔 인간이 가진 절망적인 면이 녹아있다. 이런 행복과는 거리가 먼 모습들은 조금 반면교사 같은 느낌도 준다.

맨몸으로 여행하는 네레오는 돈을 벌기 위해 몇 개월간 머무르거나 오랫동안 정착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 와중에 소소한 행복도 찾는다. 하지만, 그 일상의 행복은 오래가지 않는다. 왜 그런지는 정확히 알 수 없고, 작가 역시 그것을 명확히 말해주지 않는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그게 어떤 느낌인지는 알 것 같았다. 나 역시 일상에서 그런 느낌을 받은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곧 다시 여행을 떠나리라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문제는 그러려면 일상을 깨뜨려야 한다는 건데, 작가가 그걸 부추기는 방식이 좀 의외였다. 절망과는 조금 달랐던 네레오의 평온하달 수 있는 일상을 깨뜨리기 위해 주변 인물을 과감하게 변화시켜버렸기 때문이다. 워낙 큰 변화여서 되짚어보면 확실히 기억에 남을 만큼 튀고 어색하다. 하지만, 소설을 볼 때에는 그렇게 위화감이 일지만은 않았는데, 인간이란 으레 그런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떠날 때 마무리가 깔끔하지 않았던 것도 네레오 역시 인간임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아쉬운 것은 결말에 다다라서도 결국 인생에 대한 답은 알 수 없다는 거다. 생각해보면, 작가는 처음부터 오만하게 그게 무엇인지 규정할 생각이 없었던 것 같다. 대신 여러 인간군상을 보여주고 그와는 조금 달랐던 네레오의 인생과 그의 결정들을 보여주면서 어떤 작은 울림과 느낌을 전해주고 싶었던 것 같다. 그를 위해 어린 왕자 식의 이야기 구성을 택한 것은 좋은 선택이었다고 본다. 덕분에 네레오의 여정을 따라가며 다양한 이야기들을 보는 재미가 있었다. 다만, 소설을 보고 무엇을 느낄 것인지는 각자의 몫이다.

이 리뷰는 YES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고 작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