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 시집’은 그의 시집 1, 2편과 대표 소설, 대표 수필을 수록한 책이다.

표지

이상 시집 1, 2편을 모두 수록해서 빠짐없이 볼 수 있는 것이나, 그걸 초기본 순서 그대로 정리하여 첫 발간 당시의 의미를 살렸다는것이 좋다.

하지만, 표기만은 현대어를 따르도록 하고 한자도 한글로 바꾸거나 일부 병기했는데, 이는 현대 한국어가 비록 한자어는 많아도 한자 자체는 많이 쓰지 않은걸 고려한 것이다. 덕분에 내용은 어렵지만 좀 편하게 읽을 수 있다. 물론, 한편으론 이상 시의 특이함이 좀 덜해진 것 같아 아쉽기도 하다.

그의 시는 띄어쓰기가 없는걸로도 유명하기도 한데, 막상 읽어보면 생각보다 그것 때문에 읽기 어렵거나 많이 헷갈리지는 않다. 띄어쓰기가 없는것은 얼핏 예전 한글 표기를 따른 것 같기도 하고1, 그의 인생을 생각하면 일본어에서 영향을 받은 것 같기도 하다.2 진짜는 문법파괴 시도의 일환인 듯한데, 소설은 무난하게 띄어쓰기를 했고, 시 중에도 띄어쓰기 한것을 보면 그렇다.

이상의 시는 마치 의식의 흐름대로 쓴 것 같기도 하고, 아무렇게나 쓴 것 같기도 하다. 그만큼 의미를 알 수 없고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게 계산해서 쓴 것 같다니, 그저 놀랍기만 하다.

문제는 그걸 이해하는 사람이 없다는거다. 물론 여러 사람들이 해석을 남기기도 했지만, 그것이 모두 일치하는 것도 아니어서 여전히 혼란스럽다. 다 그럴듯 해서 더 그렇다.

그런데도 그의 시에 매력을 느낀다. 제대로 이해하기는 커녕 어렵다고 모르겠다고만 하면서도 말이다. 그 이유 역시 그의 작품 만큼이나 알 수 없는 것 아닐까.

그래도 다만 한가지 느낄 수 있는것은, 어둡고 칙칙한, 어쩌면 절망같은, 어두운 감정이 담겨있다는 거다. 이 느낌은 어쩌면 그가 일제강점기에 살았다는 역사에서 온 것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가 겨우 만 26년 7개월만에 죽었다는 점에서 온 것일지도 모른다. 그것도 아니면 정말로 그의 사회에 대한 실망과 병세로 인한 절망이 자연스레 작품에 묻어난 것일지도 모르겠다.

  1. 한국어도 원래는 문장을 나누는 등의 특별한 경우가 아닌 한 띄어쓰기를 하지 않았다. 이는 한자와 혼용했을 경우 띄어쓰기를 하지 않아도 충분하고, 띄어쓰기가 없으면 인쇄 비용이 줄어서인 듯하다. 남아있는 것 중 띄어쓰기가 있는 기록물은 1877년 영국 목사 존 로스(John Ross)가 쓴 ‘Corean Primer’가 가장 오래됐으며, 독립신문에서도 본격적으로 사용했다. 이 후 1933년 조선어학회에서 띄어쓰기를 한글 맞춤법 통일안에 반영하면서 공식적인 문법으로 자리잡았다. 참고로, 이상은 1931년부터 작품활동을 했다. 

  2. 이상은 일제강점기에 살았고, 일본 유학을 했으며, 일본어로 시도 썼다. 우리가 아는 이상의 대표 시 중 일부는 일본어로 발표한 것을, 그를 흉내내 한국어로 번역한 것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