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시아 벌린(Lucia Berlin)’의 ‘청소부 매뉴얼(A Manual for Cleaning Women: Selected Stories)’은 그녀가 생전 발표했던 76편의 단편 중 43편을 선정해 엮은 소설집이다.

표지

실제로 내가 본 것은 그 중 15편1을 가제본으로 엮은 일종의 샘플북이다. 그래서 책 전체에 대해 얘기할 수는 없으나, 읽으면서 받았던 공통된 느낌이 있어 그를 적어본다.

책에 실린 단편들은, 그 수에서도 어느정도 짐작 했겠지만, 굉장히 짧은 편이다. 가장 짧은 것은 달랑 1장(“나의 기수”)에 쓰인 것도 있다. 이렇게 짧다보니 이야기도 좀 함축적이고, 뭔가 알 것 같다 싶으면 끝나버리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보는 내내 상당히 난해하고 당황스럽기도 하다.

이는 그녀의 단편들이 모두 특정 장소에서 벌어진, 특별한 경험을 얘기한 것이라 그렇다. 거기엔 성별적인 요소도 있고, 지역적이거나, 민족(또는 국가)적인 것도 있다. 그래서 만약 그런 것들을 미리 알고 있지 않다면, ‘이게 뭔 소리야’하는 얘기가 나올지도 모른다.

픽션으로서 잘 짜여진 이야기라기 보다 누군가의 고백이나 경험을 일부 떼어다가 소설이라는 형식으로 다시 써낸 것 같아서 더 그렇다. 실제로 작가는 단편의 상당수를 자기 경험을 바탕으로 썼다고 한다. 결혼, 이혼, 알코올중독이나 임신, 낙태까지. 어떻게 보면 그녀의 단편들은 그녀 자신의 인생을 나누어 담은 일종의 조각 같은 것인 셈이다.

그래서 그런지 안그래도 썩 유쾌하지만은 않은 이야기가 더욱 묵직하게 들린다. 당연히 그런듯히 담담하게 그려낸 사회의 모습이나 사람들의 행동에서도, 심지어 일부러 그렇게 보이려고 하는 의도가 보이지 않는데도, 묘하게 소름돋게 하는 현실의 암울함이 느껴진다. 이런 삶을 살았다니, 참. 재미를 위한 픽션이라기 보다는 어느정도 논픽션으로 생각하고 보는 게 좋다.

번역은 썩 좋지 않다. 문장이 잘 읽히지 않을 뿐더러, 오역도 있기 때문이다. 굳이 원문을 보지 않아도 오역이 보일 정도라면, 과연 다른데는 얼마나 제대로 번역된 것일지. 앞서 작품이 난해하다고 했는데, 거기엔 번역도 한 몫 하지 않았을까 싶다.

  1. 가제본에 수록된 단편은, 정식 발매본의 앞 15편으로, 다음과 같다: 에인절 빨래방 / H. A. 모이니핸 치과 / 별과 성인 / 청소부 매뉴얼 / 나의 기수 / 엘 팀 / 관점 / 그녀의 첫 중독치료 / 환상 통증 / 호랑이에게 물어뜯기다 / 응급실 비망록 1977 / 잃어버린 시간 / 카르페디엠 / 모든 달과 모든 해 / 선과 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