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골짜기의 단풍나무 한 그루’는 단풍동에 사는 어른이족과 그들의 이야기를 담은 판타지 소설이다.

표지

첫 인상은 좀 특이하다는 거였다. 설정으로 시작하는 것도 그렇지만, 현실과 판타지의 경계가 기존과는 다르다는 것이 가장 그렇다.

판타지는 보통 현실과의 접점이 있게 만든다. 예를 들어, 사회의 건너편에 있다던가 또는 그 안에 교묘하게 숨어 있어서 대부분의 것은 일반 사회와 다를 게 없지만 작품만의 특별한 요소들이 등장한다는 식으로 말이다. 그러는 편이 친숙하고 쉽게 받아들일 수 있으며, 그래서 몰입하기도 좋기 때문이다. 지금 판타지라고 하면 의례 떠올릴만큼 친숙한 ‘중세 판타지’도 그렇다. 중세시대를 배경으로 판타지 요소를 첨가한 모양새다.

그러나 이 소설은 그와는 좀 다르다. 처음부터 전혀 다른 세상을 그리며, 심지어 이들의 생활과 문화도 우리네 것과 유사하지도 않다. 일부 닮은 점도 있지만 다른 점이 더 많다.

반면에 이야기는 지극히 현실적이다 생김새도 생활도 모두가 다른 어른이족이지만, 그런 그들이 하는 짓들은 어찌나 인간의 그것을 연상케 하는지. 가끔은 판타지라는 걸 잊고 인간군상극을 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래서 작품에서 느껴지는 것도 다르다. 보통의 판타지가 일상을 기준으로 거기서 벗어나는 오락물에 가깝다면, 이 소설은 오락물의 형태로 인간을 깊게 들여다보는 느낌이다. 그것은 이야기를 통해 직접적으로 얘기하기도 하지만, 어른이족과 인간의 차이를 통해 은근히 다가오기도 한다.

그러면서 나름 재미도 챙겼다. 의외로 설정도 매력적이고 문장력이 좋아서 어른이족의 문화와 그들의 이야기를 보는 게 꽤 흥미로웠다.

몇가지 아쉽거나 무슨 의도였나 모르겠는 것도 있었다. 대표적으로, 어른이족 설정을 이야기를 통해 풀어내지 않고 소설 앞쪽에 ‘선행학습 할 것’이라는 양 적어둔 것이 그렇다. 이야기로 풀어낼 수 없었나?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인간과는 크게 다른 날짜 세는 법도, 비록 일부 에피소드에 이를 활용하기도 하지만, ‘손가락이 10개니까 10진법’이라고 하는 것처럼 설득력 있는 이유를 제시하지는 못해서 굳이 그런 복잡한 방식이 필요했나 싶기도 했다. 단지 인간과의 차이점만을 드러내기 위한 장치같아서다.

각 에피소드의 제목을 굳이 목차와 본문을 나눠 그렇게 적어둔 것도 굳이 그렇게 한 이유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더라.

판타지라 하면 소위 ‘중세 판타지’라 하는 유럽식 판타지를 떠올리는데, 이 소설에서는 그와는 좀 다른 동양적인 냄새도 풍긴다. 그게 조금은 낯설고 판타지보다는 무속적인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흥미롭게 잘 풀어내서 나쁘지 않았다. 이런 이야기가 앞으로도 많이 나와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