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바스티안 피체크(Sebastian Fitzek)’의 ‘내가 죽어야 하는 밤(AchtNacht)’은 살인 게임을 소재로 한 소설이다.

표지

원작의 제목인 AchtNacht은 직역하면 88이나 8의 밤 등이 되나 독일이라는 문화적인 배경이나 소설의 내용을 생각하면 굉장히 중의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1 이걸 한국어로는 결코 전달할 수 없기에 결국 새로운 제목을 붙였는데, 정식 한국어판의 제목을 보고 괜한 웃음을 지었다. 이것도 꽤 적절했기 때문이다.

시작은 왠 기묘한 웹사이트다. 이곳에 접속하면 마치 데스노트처럼 죽이고 싶은 사람의 이름을 넣을 수가 있는데, 그러면 매년 8월 8일 추첨을 통해 죽일 사람을 선정한다. 단순한 장난같은 이 사이트가 놀라운 것은 처벌 없음을 보장함은 물론 무려 천만 유로(현재 약 127억)의 상금까지 준다는 거다. 그게 어떻게 가능한지는 모른다. 어쩌면 거대 기업이 있을지도, 심지어 정부가 관여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혹은 전혀 근거가 없는 거짓말 같은 얘기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막대한 상금에 끌린 사람들이 하나씩 움직이고 이는 곧 광기와 같은 살인게임의 양상을 띠게 된다.

대상으로 찍힌 주인공은 과연 그런 사람들의 공격으로부터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를 대상으로 추천한 사람은 대체 누구일까. 이 게임을 주도하고 개최한 흑막의 사람은 또 누구일까.

살인게임은 이미 여러번 사용된 적 있는, 어찌 보면 흔해빠진 소재다. 마치 제도적으로 인정한 듯한 모습이나, 막대한 보상도 그렇다. 이런 상황에 휘둘려 살인이란 금기를 꺤다는 거부감도 잊은 채 달려드는 인간군상의 씁쓸함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이 소설은 닳아빠진 소재를 우려먹은 재미없는 소설일까.

놀랍게도 전혀 그렇지가 않다. 익숙한 소재들 사이에서도 저자는 이 소설에서만 맛볼 수 있는 재미를 분명하게 준다. 사냥감으로서 쫒기면서도 배후를 찾는 전체 흐름이나, 그 과정의 풀이와 묘사도 괜찮으며, 끝까지 기다리고 있는 비밀과 반전 역시 나름 나쁘지 않다. 이것들이 전혀 예상할 수 없다거나 한 것은 아니었음에도 그렇다.

이미 익숙한 소재로도 어떻게하면 자기만의 색깔을 지니면서 또한 재미있을 수 있을지 이 소설이 잘 보여주는 것 같다. 스릴러를 좋아한다면 충분히 재미있게 볼 수 있을 것이다.

  1. 이에 대한 설명이 책 말미 옮긴이의 말에 적혀있으므로 꼭 읽어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