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 문예반’은 십대 청소년들의 글쓰기를 통한 상처 치유를 그린 소설이다.

표지

고등학교 문예반을 소재로 한 이 소설은 사춘기, 소녀, 불우한 가정환경, 빡빡한 현실, 어찌해야할지 알 수 없는 미래 등을 고루 담아냈다. 그를 통해 청소년기의 불안한 현실과 미래를 살펴보고, 그것들을 겪어나가는 아이들을 보여주며 작은 위로, 작은 희망을 얻길 바라는 마음이 느껴진다.

문제는 그런 주제의식의 표현과 소설의 완성도가 썩 좋지 않다는 거다. 문예반에서 굳이 자신의 솔직한 상처와 속내를 드러내라고 하는 것부터가 그렇다. 물론 그게 글을 쓰는 한가지 방법이기도 하고, 특히나 고민많은 아이들에겐 속풀이 수단이 되기도 하므로 교육적으로는 여러모로 유용하리라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작품 내에서 그건 좀 뜬금없이 등장하여 노골적으로 배설을 요구한다. 청소년 상담실도 아닌데 그걸 그렇게까지 강조하는 이유가 납득이 안된다는 얘기다. 그것 아니어도 아이들은 그 힘들다는 과제를 잘만 해오지 않았던가.

문예반 활동은 저자의 경험이 반영된 것일테고, 실제로 시행했던 또는 시행할법한 활동을 다룬 것일터다. 그러나 소설에서는 마땅히 해야만 하는 이유가 보이지 않아 어거지로 밀어 붙이는 것으로밖엔 안보인다. 그러니 거기에 참여하는 아이들도 적을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실제로 소설적으로도 기껏해야 그저 아이들이 모두 나름의 사연이 있고, 그래서 모두 힘들어 한다는 것을 얘기하는 것외엔 별 용도도 없었다. 그걸 굳이 그렇게 무리하게 밀어붙여야 했을까.

이런 생각은 당연히 소설이 아이들의 사연과 심정 등을 제대로 풀어내지 못해서 드는 것이다. 당장, 주인공인 고선우만 봐도 그렇다. 누구와도 견줄 수 없을만큼 불우한 과거, 그로 인해 틀어진 마음, 그게 세상의 시류에서 엇나간 듯한 다른 아이들과는 색다른 시선을 가지게 했다는 걸 나름 그럴듯하게 뱉어내기는 하지만 그로인한 갈등이나 해소를, 그리고 그를 통한 성장을 제대로 보여주지는 못한다. 각각이 좀 따로 논다는 얘기다. 그건 주인공 대비되는 입장에 있는 오미수 역시 마찬가지다. 그 이상한 결말은 대체 뭔가.

많은 이야기를 통해 아이들이 가진 속사정이나 이야기 자체는 열심히 적어냈으나, 막상 중요한 곳에서는 중간을 생략한 듯 갑작스레 전개되며 그들이 하는 선택들도 썩 공감이 가지 않는다. 그래서 간혹 캐릭터가 급작스레 바뀐 느낌도 준다.

소설이 어떤 희망이나 위로 같은 걸 줄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끝이 마뜩잖아서다.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느낌이랄까. 그래서 잘 짜여진 소설이라기 보다는 마치 픽션을 섞어 뱉어낸 일종의 수기처럼 보이게도 했다.

어쩌면 욕심이 너무 많았던 건 아닐까. 너무 여러 이야기를 하기 보다는 고선우면 고선우, 오미수면 오미수, 가정 문제면 가정 문제, 입시면 입시, 꿈이면 꿈, 어느 하나에만 집중해서 이야기를 풀어냈다면 훨씬 낫지 않았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