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 토드(Anna Todd)’의 ‘애프터(After)’는 치명적인 남자와의 밀당 연애를 그린 로맨스 판타지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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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의 시작은 저자가 2013년 ‘Imaginator1D’라는 필명으로 왓패드(wattpad)에 이 이야기를 써서 올렸던 것이다. 그게 무려 1억 뷰를 기록하면서 이렇게 정식으로 출판이 된거다.

좀 더 올라가면 여기에도 기원이 있는데, 당초 이 소설은 저자가 영국의 보이밴드 ‘원디렉션(One Direction)’의 열성팬으로서 그 멤버인 ‘해리 스타일스(Harry Edward Styles)’를 주인공으로 그렸던 팬픽이었다. 그걸 모태로 해서 그런지 소설엔 여전히 그 흔적이라 할만한 것들이 남아있다.

딱히 서로에 대해 왜 끌리는지는 제대로 나오지 않는데도, 심지어 남자 주인공인 하딘(Hardin Scott)이 그토록 제멋대로고 상처주는 말과 행동을 하는데도, 그저 잠깐 보는 것만으로도 몇번씩이고 다시금 끌려버리고 마는 것이 그것이다. 이건 애초에 깊은 애정이 있으면서 또한 일방적인 애정상납의 관계에 있는 ‘팬’ 입장에 있는게 아니라면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다. 이 일반적으로는 납득하기 어려운 연애관계 설정이 이 소설의 단점이자 한계점이다.

물론 소설은 고전 명작인 ‘오만과 편견’을 재미있게 이용하기도 했고, 크게 인기를 끌었던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처럼 관능적인 재미를 제공하기도 한다. 막 성인이자 대학생이 된데다 여러 또래들과 함께 술과 섹스가 난무하는 화려한 파티를 접하며 새로운 자극에 눈에 뜬다는 건 분명 흥미로운 소재다. 포르노로까진 치닫지 않으면서도1 둘만의 은밀한 행위를 묘사한 문장력도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다. 거기에 ‘너에게 닿기를’에서 봤던 가슴 터질것처럼 답답하게 평행선을 그리는 둘의 마음까지, 참 여러가지를 갖춰놓기도 했다.

그러나 둘이 왜 그렇게까지 서로에게 빠져드는 지는 전혀 설득력있게 그려내지 못했다. 파티와 자유로운 섹스라는 한국과 미국의 문화 차이를 고려하더라도 그렇다. 불필요하게 남자친구와 갈등하고 철면피같이 반복하는 자기반성도 불편하다. 그래서 굳이 ‘이건 막장물이야’라며 이어 읽어나가봤지만, 끝내 두사람의 입장이나 마음이 이해되지는 않았다. 그저 이 소설은 혹시 작가 자신의 자위를 위한 개인적인 성적 판타지를 녹여낸 것은 아닌가하는 의심만 생겨났을 뿐이다. 차라리 ‘전 남자친구’라는 존재는 없는게 낫지 않았을까. 그는 오히려 두 주인공의 로맨스에 집중하지 못하게 만드는 쓸데없는 등장인물이며 관계, 갈등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관계, 이야기가 과연 풀어질 수 있을지. 이 막장같은 드라마는 또 어떤 결말을 보여줄지. 2권을 봐야만 알겠다.

사족으로, 오타 등이 꽤 여럿 눈에 걸리기도 했다. 물론, ‘은’과 ‘을’을 잘 못 쓴 것처럼 사소하다 할만한 실수이긴 했다만, 좀 꼼꼼히 교정했으면 더 좋았겠다.

  1. 사실, 이건 조금 어색하기도 해서, 작가가 ‘굳이’ 수위조절을 한 듯 보인다. 현실적이진 않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