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노 다케시(北野 武)’의 ‘아날로그(アナログ)’는 잔잔한 사랑 이야기를 담은 소설이다.

표지

솔직히, 생각했던 것과는 좀 달랐다. “무색소 저염식”이라길래 엄청 평범하고 별 것 없는 것 같은 일상이 마치 흐르는 물처럼 흘러가는 그런 소설일 줄 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읽어보면 생각보다 색채도 띄고 있고, 짠맛과 단맛도 느껴진다.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잔잔한 편이다. 최근 추세와는 달리 크게 자극적이지도 않고, 엄청 급박하게 흘러가지도 않는다. ‘아날로그’ 방식을 선호하는 사토루 만큼이나 참 옛스러운 연애 소설이라는 생각이 든다. 현대를 배경으로 한 옛날 연애 소설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그게 조금은 향수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그렇다고 고루하다거나 지루하다는 얘기는 아니다. 그렇게 느껴질 것을 의식했는지 크게 중요하지 않은 부분은 생략해서 이야기의 진행을 빠르게 당기기도 했고 말이다. 느릿하고 잔잔한 두 주인공을 대신해서 옆에서 만담처럼 서로 썰을 주고받는 두 친구들의 대화에는 웃음도 난다. 일본 소설이라 그런지 감정 과잉도 없어 차분한 느낌이 들지만, 그렇다고 공감할 수 없을만큼 기묘한 무덤덤함까지 보이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 점에서 느릿함과 빠름, 감정과 절제를 나름 잘 했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런 장점이 끝까지 이어지지 못하고, 뒤로 갈수록 허술한 면을 더 많이 보인다. 이야기를 위해 억지로 넣은 듯 어색한 점들도 있고, 그것들을 들이미는 방식도 너무 갑작스러운 면이 있어서 공감을 못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주인공이 여주인공에게 느끼는 감정을 묘사한 것도 좀 쌩뚱맞다.

풍속이나 음악 등 일본 문화의 일면들도 굳이 튀어나오는 감이 있다. 딱히 이야기와는 큰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만담 이야기야 감초역할을 하는 친구들의 역할과 겹치므로 나름 의미가 있다고 하더라도, 다른 것들은 굳이 필요했나 싶기도 하다.

많은 것을 생략해 진행을 빠르게 한 점도 후반으로 갈 수록 소설로서는 아쉽다는 느낌을 더 많이 준다. 미처 각 인물들의 서사와 감정에 공감하기도 전에 흘러가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치 소설이 아니라 영화 요약본을 보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같은 내용이라도 2시간 남짓한 시간에 압축한 영상물로 보는 것과 깊고 진득한 글로 보는 소설이 주는 감성은 분명 다르다. 그런데도 이렇게 한 것은 분명 실수가 아닐까. 영화화를 공언했다고도 하는데, 이럴거면 처음부터 영화로 만들었어야지.

감독으로선 국내에 그리 잘 알려져있지 않지만, 저자는 자기만의 색깔을 잃지 않는 영화를 만드는 것으로 일본에서는 꽤 유명한 감독이기도 하다. 영화 쪽에서는 나름의 강점이 있다는 얘기다. 그게 소설로는 제대로 드러나지 않은 것 같아 아쉽다. 영상화가 된다면, 그 쪽을 기대해 보는 것이 낫겠다.

이 리뷰는 리뷰어스 클럽을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고 작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