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란영웅전은 중세 판타지를 배경으로, 판타지 영웅 전기를 가장한 추리 스릴러다. 처음 봤을때는 얼핏 안어울릴것같은 조합같다만, 이 묘한 갭이 막상 보면 생각보다 매력적이다.

초반 타이틀 이미지

다만 평은 썩 좋지만은 않은데, 추리물로서는 쫌 부족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왜냐하면 추리물이라 하기엔 그 전에 등장하는 힌트가 너무 적고, 심지어 그 힌트 마저도 작가가 아니면 알 수 없는 것들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대표적인것이 마법이다. D&D처럼 미리 정해진 유명한 룰을 따르지 않는 한 판타지에 나오는 마법과 마법 표현은 작가마다 다른데, 하필 이 마법이 사건의 주요 요소 중 하나로 나오기 때문에 해설이 나오기 전까지 독자가 직접 추리를 해본다던가 할만한 껀덕지가 별로 없다. 자유롭게 ‘상상’정도야 해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건 추리물로 봤을때 그렇다는 얘기고, 그냥 ‘판타지 스릴러’로 본다면 그렇게 나쁘지는 않다. 스릴러에서 중요한것은 흥분이나 긴장감 같은 감정적인 요소니까.

이 작품에는 몇가지 매력 요소들이 있는데, 나는 그 중에서 정의가 모호한 정신관이 맘에 들었다. 이런 느와르적인 판타지 세계관—쉬운 예를 들자면, 용사가 타락해 마왕이 되고, 그 마왕을 죽인 용사가 새로운 마왕이 된다는 식의 선악 붕괴 구도를 가진 세계관—이야 전부터 있었던 것이긴 하지만, 그건 대부분 적군이 나중엔 아군이 되거나, 적군이 오히려 더 인간적이라거나, 또는 ‘절대 선은 없다’는 정도로 쓰였었는데, 아스란에는 그보다 좀 더 인간적인 암울함이 있다. 심지어는 용사라는 자 조차 ‘죽어도 되는 사람(27화)’이라느니 하는 소리를 지껄이고, 각 에피소드의 끝도 전혀 해피엔딩 같은게 아니거든.

작가가 회수도 않을 떡밥을 쓸데없이 많이 뿌려놓은점은 아쉬움이 많이 남고, 후기에서 얘기한 ‘작가의 의도’가 거의 전해지지 않았다는 것(즉, 주제 전달에 실패했다는 것)은 이 작품의 가장 큰 오점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먼치킨 용사의 활약이라던가 파국으로 치닫는 결말이라던가를 보는것은 썩 나쁘지 않았다. 후속작이나 외전이 (이제는 좀) 나오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