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골목집에서’는 1947년 미군정 시기를 배경으로 서로 마주치는 세명의 이야기를 그려낸 소설이다.

표지

기본적으로 이 책은 가상의 이야기를 그린 소설이다. 그러나 당시 시대를 잘 그려낸데다, 등장인물들을 여운형이나 박춘금 같은 실제 인물들과도 잘 엮어서 마치 실제 역사의 일면을 보는 듯한 느낌도 들게 한다. 이렇게 이야기에 담겨있는 역사적인 사건들은 실제로 주인공들에게 큰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시대가 시대이다보니 친일파나 좌우에 대한 이야기도 있고, 부자나 친절, 가식에 대해서도 다루긴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시대에 휘말린 사람들을 통해 사회적인 이야기를 한다거나, 개별 주제들에 대해 철학적으로 깊게 사유하는 것 까지는 아니다. 다만 언급하고 넘어감으로써 한번씩 생각해보게 할 뿐이다.

그보다는 그런 당시를 살았던, 조금씩 다른 입장에서 서로 다른 생각을 품고있던 십대 소년, 소녀 세명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담은 것에 가깝다. 그들의 만남과 이별, 그러면서 피어나는 풋풋한 로맨스나 엇갈림이 주요 이야기이며 그런 과정에서 서로 다른 것을 깨닫고 성장하는 모습같은 것을 그리기도 했다.

그래서 이 소설은 일종의 성장 소설이면서 또한 로맨스 소설처럼 읽히기도 한다. 그들은 사회적인 입장차가 있는데다, 무엇보다 어리고, 그래서인지 솔직하게 속내를 털어놓지도 못하는데 그런 사소한 것들이 쌓여서 그런 결말이 되었다는 걸 생각하면 못내 안타까움이 느껴진다.

비록 지금과는 다른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충분히 대중적이고 쉽게 상상할 수 있는 일들을 그려서 그런 그들의 이야기나 심정에도 잘 감정이입이 된다.

아쉬운 것은 소설이, 아이들의 이야기에 집중해서 그런지, 온전히 그리지 않은 이야기가 꽤 있다는 거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이중적이어 보이는 태도라던가, 오빠의 봉사활동과 대학 문제, 그리고 삼촌에 대한 진실 등이 그렇다. 이것들은 물론 아이들의 정신적인 성장이나 결정에 큰 역할을 하는 등 중요하게 쓰이기는 하지만, 그 자체는 대충 두루뭉술하게 넘어가는 면이 있어서 묘한 빈 공간도 느끼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