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지수신’은 의자왕 말기 백제의 멸망 과정과 그 이후의 부흥운동을 그린 가상역사 소설이다.

표지

소설의 주인공 중 하나인 지수신(遲受信)은 별로 잘 알려진 인물이 아니다. 오죽하면 흑치상지(黑齒常之)는 알아도 지수신은 모를 정도니까 말이다.

이는 아마도 흑치상지가 삼국사기 백제인 열전에 실렸기 때문일 것이다. 당시 백제인이라면 귀실복신(鬼室福信)처럼 더 중요한 인물들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흑치상지가 실린것은, 아마 다른 인물들의 사료를 찾기 어려워서 였을 것이다. 반면에 흑치상지는 당나라로 넘어갔기 때문에 구당서, 신당서 등에 기록이 있어 참고하기 좋았을 것이고.

이는 백제가 결국 전쟁에 패해 멸망한 국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와 관련한 기록도 적은데다가, 기껏 있는 기록도 (승전국에 의해) 변조되었다는 것이 의심스럽기도 하다. 백제의 최후가 너무나 막장인데다 허무했던 것이 그렇고, 그 과정에서 백제인들이 보여줬던 면면들이 썩 좋지 않았던 것이 또한 그렇다.

작가는 그 중에서도 사실상 최후까지 백제부흥운동을 했었던 지수신에 주목해서 그의 이야기를 거의 처음부터 새롭게 다시 써냈다. 그의 행적에 당위성을 부과하기 위해서 새로운 인물을 등장시켰으며, 그는 소설속에서 알려진 것과는 다른 길을 걷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역사라는 큰 흐름을 거스르지는 않게 자중해 역사소설이라는 틀에 머물러 있는다.

문제는 그 덕에 기꺽 백제의 편에 서서 백제를 변호하는 입장으로 꺼낸 이야기인데 막상 별로 변호가 잘 되는 것 같지 않아보인다는 거다.

가장 대표적인게 의자왕(義慈王)이다. 아무리 묘사할 때는 그가 방탕하고 무능하지 않은 것처럼 얘기해봤자, 역사에 따르는 정치/군사적인 흐름대로 가다보니 어쩔 수 없이 그러면 면모가 풍겨나서 오히려 앞뒤가 안맞는 이상한 분위기를 형성해 버린다. 어쩔 수 없이 그런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추가적인 인물이나 공작이 없기 때문에 더 그렇다.

그렇다보니 기존에 알려진 역사의 큰 줄기를 유지한 것이 과연 옳은 선택이었는지 의문스럽기도 하다. 역사왜곡 논란에선 강점을 가질지언정, 소설로서의 완성도에는 단점으로 남기 때문이다.

그나마 주인공인 지수신이 많이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고, 주요 인물인 율과 선은 작가가 만들어낸 가상 인물이라서 이들의 이야기에선 그런 점이 덜하다. 대신 그런만큼 때때로 시대와 어긋나보이는 모습을 비치기도 한다.

이런 점들이 이 소설에서 호불호가 갈릴 요소가 아닐까 싶다.

개인적으로 인물들의 면면을 새롭게 그려낸 점은 꽤 좋았으며, 그걸 더 밀어붙여 영웅이나 마왕같이 극단적으로 해석해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았다. 그랬다면 어쩌면 앞서 얘기했던 앞뒤가 안맞는 것도 의외로 얼버무릴 수 있었을 것도 같고. 자중하지 말고 더 자유롭게 썼다면 어떻게 됐을지 좀 궁금하다.

잘 모르는 백제 이야기를 볼 수 있는 것도 좋았다. 역사소설이라고 하면 대부분 자료도 많고 익숙한 조선을 배경으로 하거나 고조선처럼 아예 옛날로 가서 완전히 새롭게 만들어내는 것이 많은데, 앞으로도 이 소설처럼 좀 더 다양한 고대국의 이야기와 역사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 나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