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다리’는 그래비티북스에서 내놓는 SF 시리즈인 ‘그래비피 픽션’의 여덟번째 작품이다.

표지

왠지 암울함이 느껴지는 제목에서부터 감을 잡았겠지만, 이 책은 멸망한 지구의 그 후와 그곳에서 남은 자들의 이야기를 그린 아포칼립스 소설이다.

그렇다고 과학 지식이나 문명이 완전히 소멸되어 원시로 돌아간 이야기를 그리는 것은 아니다. 대신 멸망 직후에 아직은 남아있는 것들로 그것을 극복하려 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리면서 과학과 인간, 그리고 지구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보게 한다.

사실 프롤로그만으로는 그런 이야기가 될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거기에서는 엄청나게 발전한 세상과 우주 개척 이야기를 인터뷰 형식으로 보여줬기에 마치 그 이후의 이야기 역시 우주에서의 일이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멸망도 설마 그런 식으로 맞이하게 될 줄은 생각도 못했다. 그렇게 되는 과정이나 개연성에도 의문이 남는다. 그래서 좀 의외의 전개라고 느끼기도 했다.

그건 이 후 본 이야기에 들어간 다음도 마찬가지다. 일이 그렇게 된 것에 대해 꾸준히 미묘하고 자잘하지만 확실한 의문을 남긴다는 말이다. 그래서 실제로 그럴듯하고, 그래서 몰입하며 볼 수 있는 이야기라기 보다는 미리 설정해둔 주제를 풀어내기 위해 적절히 짜집어낸 이야기라는 느낌이 더 강했다.

그런만큼 생각할 거리는 나름 강하게 던지는 편이다. 인간성이라는 것도 그 한 측면인데, 인간과 인간이 아닌 것들이 보여주는 모습들은 꽤나 현재에도 시사하는 바가 있어 보였다.

아쉬운 것은 문장력이 좀 별로라는 거다. 갑작스럽게 장면전환을 한다던가, 앞뒤가 제대로 이어지지 않는 문장이 있어서 소설을 읽는 중간중간 갑자기 뭐라는 건지 멈칫거리게 만들었다. 앞서 얘기했던 SF로서의 그럴듯함이 부족한 것과 함께 아쉬움이 남는 점이다.

그래도 전체적으로는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아서 작가의 다른 작품을 궁금하게 만들기도 했다. 브릿G에 꾸준이 SF 단편 등을 연재하고 있는데, 거기서는 또 무슨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냈을지 나중에 시간을 내서 한번 읽어봐야겠다.

소설 외적으로는 책의 질이 꽤 마음에 들었다. 종이도 마치 풀컬러본에서나 볼만한 좋은 것을 썼고, 덕분에 무려 500여쪽이나 되는 장편인데도 별로 두껍지 않다. 그래서 (비록 무게는 그만큼 나가지만) 들고다니며 읽기 좋았다.

이 리뷰는 리뷰어스 클럽을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고 작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