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이고 싶은 아이​’는 청소년 범죄를 소재로 한 소설이다.

표지

주요 내용을 포함하고 있으므로 주의 바란다.

소설은 꽤 익숙한 구도로 시작한다. 왕따가 있어 보이는 정황, 그 피해자의 죽음, 그리고 그 죽음에 유력한 용의자로 보이는 가해자의 존재.

이야기 역시 그렇게 예정된 수순으로 흘러간다. 주변 사람들이 인터뷰를 통해 이들이 얼마나 기형적인 관계였는지를 증언하고 대외적으로는 착하고 성실한 우등생인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얼마나 뒤가 구리고 무서운 측면이 있었는지를 얘기하며 마땅히 이렇게 될법 했다고 입을 모은다.

이 뻔해보이는 구도, 그리고 마치 먹이감을 구석에 몰아넣는듯한 기조는 독자 역시 자연스럽게 그러한 방향으로 치우치도록 만든다. 그동안 가려져있던 가해자의 실체를 파헤치고 그에게 엄격한 철퇴를 가하는 것으로 말이다.

이 레일에 당신은 얼마나 올라타지 않을 냉철함과 인내심이 있느냐고 저자는 묻는다.

그렇다. 이 소설은 전혀 진실의 살아있음을, 정의가 있어 마땅함을 주장하고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이 얼마나 쉽게 호도되고 묻힐 수 있는지를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소설은 나름 잘 쓰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저자의 함정은 냉큼 빠질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그러한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것 까지는 인정하겠다만, 또한 얼마나 얄팍한 가정하에 올라있는 것인지도 분명히 알만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혀 사실과 증명할만한 것들이 밝혀지지 않았는데도, 그것을 찾으려는 노력없이 오로지 여론몰이에만 집중하는 사회와 인간들의 모습은 그저 계속해서 불편하고 기분나쁘다. 대체 진실은 어디로 갔는가 싶어서다.

그렇다고, 이 소설이 전혀 말도안되는 일이라고는 결코 단언하지 못하겠다. 이미 유사한 실례도 많았기 때문이다. 나 역시 이제껏 한번도 그런것들에 속지 않았다고는 못하겠다. 그래서 찝찝하고 쓰지만 꽤나 현실적인 꼬집음이 있다는 생각도 든다.

훗날 얼마나 어리석었는지가 명명백백하게 드러나고 난 후에도 전혀 반성없이 또 다시 그런짓을 되풀이하는 현실을 소설은 마치 냉정하게 비웃는 것 같다.

이 리뷰는 리뷰어스 클럽을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고 작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