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힘: 진형준 교수의 세계문학컬렉션’ 시리즈 첫번째 책인 ‘일리아스(Ilias)’는 ‘호메로스(Homeros)’의 유명한 서사시의 축역본이다.

표지

축역본이란 완역본과 달리 내용을 축약해 담은 것을 말한다. 원작의 일부를 빼거나, 고쳐 쓴다는 얘기다. 그래서 보통 축역본에 대한 인식이 썩 좋지 않다.

나 역시 축약본(축역본)을 썩 좋아하지는 않는다. 내용이 누락되어있다는 근본적인 한계가 너무 커서다. 실제로 꽤 많은 축약본이 제대로 설명되지 않거나 묘사가 부족한 면모도 보이곤 한다. 그러니 기왕 볼 거면 처음부터 완역본을 보는게 낫겠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지 않겠는가. 최근 완역본이 인기를 끄는 것도 다 그런 때문이다.

그러나 이건 시점을 조금 바꾸면, 축약의 질이 안좋은 게 문제다. 원작의 내용을 살려서 제대로 축약하기만 한다면 읽기는 쉬우면서도 원작의 매력도 어느정도 담아낼 수 있다. 특히 세계문학은 더 그렇다. 글의 양에 따라 비용을 지급하는지라 불필요한 내용을 집어넣어서라도 분량을 늘리던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 것들을 빼고 정제할 수 있다면 축약본도 나름 긍정적일 수 있다.

‘생각하는 힘: 진형준 교수의 세계문학컬렉션’ 시리즈에 관심이 간 것도 그래서다. 완역본을 내는 유행에서 벗어난 축역본 시리즈인데, 그렇다고 전에 있었던 것처럼 대략 줄인 것이 아니라 ‘축역본의 정본’을 내세울만큼 ‘제대로’를 말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꽤 괜찮다. 트로이 전쟁이라는 인간의 역사와 그에 깊게 관여하는 그리스 신들, 그리고 그들에게 치이며 발버둥치는 인간들의 모습이 나름 잘 살아있다.

인간사에서 벌어지는 우연적인 일들을 과거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 받아들였는지도 엿볼 수 있는데, 갑작스런 기세나 마음의 변화를 신들이 꾄 것으로 그린다던가 전쟁의 기세가 왔다 갔다 하는 것을 신이 주는 축복이나 운명으로 얘기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이런 것들은 당시의 세계관이나 사상 같은 것을 짐작케하는 한편, 이 이야기를 더욱 신화의 일종으로 보이게 만들기도 한다.

나름 장점도 보이는 반면, 축약본이라서 보이는 한계도 분명헸다. 분량이 줄었기에 등장인물과 그들의 개성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게 그 하나다. 사건의 진행이 빨라 인물들의 감정이나 결심이 순식간에 이리 저리 흔갈대처럼 흔들리듯 보이기도 한다. 이야기도 중요 내용 위주로만 다뤄져, 세부 묘사가 부족하다는게 여설히 느껴진다.

작품 양식을 서사시에서 소설로 다시 쓴 것도 비록 익숙하여 훨씬 편하게 읽을 수 있게는 하나 원작이 서사시라서 갖고있던 그만의 독특한 양식미는 모두 잃어버려 아쉬움도 남는다.

작품의 매력까지 전부 담아낸 책은 아니다. 그래도 일리아스의 전체 내용을 편하게 훑어보기에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