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힘: 진형준 교수의 세계문학컬렉션’ 시리즈 38번째 책인 ‘허먼 멜빌(Herman Melville)’의 ‘모비 딕(Moby-Dick)’은 광활한 대양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고래와의 처절한 싸움을 그린 작품이다.

표지

지금은 손에 꼽을만큼 유명한 이 작품이 초기에는 왜 그렇게까지 외면 받았는지 모르겠다. 이런게 예술의 신기라는 건가.

저자의 살아 생전에는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했던 이 작품은, 의외로 당시의 고래잡이 풍경이라던가(작가가 실제로 원양포경선에서 일한 경험이 있다고 한다), 오랜 기간동안이나 바다 위에서만 생활하며 고래와의 싸움을 이어나가는 고래잡이꾼들의 고뇌 등을 잘 담고있다. 마침내 그토록 바라 마지않던 모비 딕과 만나 싸우는 장면에서는 꽤나 그럴듯한 해양 액션의 면모를 보여주기도 한다.

이 작품은 또한 바다를 떠도는 선원들의 심정도 꽤 잘 다뤘다. 복수에 미쳐 뻔한 결말을 앞두고서도 끝끝내 돌진하는 포경선의 선장 에이해브라던가, 그와 반목하면서도 존경하고 때로는 깊은 정신적 교감을 나누기도 하는 스타벅도 그렇다. 특히 스타벅은 그런 선장 때문에 여러번 고뇌를 하면서 과연 그래도 되는가 하는 철학적인 질문을 남기기도 한다. 인종이나 종교 문제 등을 담은 것도 그렇다.

다만, 이 책은 축약본(축역본)이라서 그런지 그런 면모들이 세밀하게 그려지지는 않는다. 특히 스타벅의 고뇌와 에이해브 선장에 맞서는 모습이 그렇다. 너무 단편적으로만 다루고 넘어가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가 깊고 신중하게 생각하는 게 아니라, 충동적이고 가벼우며 결국엔 선장에게 맞서거나 큰 결정을 내릴 용기가 없는 겁쟁이처럼 보이게도 한다.

나름 열심히 어떤 승무원들이 있는지를 소개한 것 치고는 그들의 이후 모습이나 최후를 제대로 담지도 못했다. 이게 이 책에 (축약으로 인한) 분명한 공백이 있음을 알게 한다.

그래도 작품의 얼개는 잘 담고 있으며, 현대어와는 달라 난해하다는 표현도 큰 무리없이 이해할 수 있게 잘 풀어냈다. 그런데도 일부 원작의 흔적이 남아있는 대사도 있긴 하나, 편하게 작품의 전체 이야기를 접할 수 있는 것은 장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