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은 조선후기 실존했던 안동장씨의 삶을 그린 일종의 역사 소설이다.

표지

아니, 이걸 역사 소설의 일종이라고 해도 될지 모르겠다. 왜냐하면 보통의 역사 소설이 가진 가장 큰 특징, 즉 당시의 역사적 사실을 보여주면서 그 이면을 그린다는 점이 그렇게 잘 드러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보다 이 글은 거의 처음부터 대놓고 정치적이다.

어떤 면에서 그러냐. 소위 여성주의적인 면에서 그렇다. 어쩔 수 없이 ‘페미니즘은 돈이 된다’는 비꼼을 다시한번 떠올리게 된다.

그렇다면 이 글도 그렇게 시류에 휩쓸린 뻔하고 흔한 여성위해주기식 글이냐. 놀랍게도, 그 반대다. 사실 당연하다면 당연하다. 예전 시대를 살아온 그가 작금의 여성주의를 옹호한다면 그건 좀 가식적이지 않겠는가.

그렇게 편하게 시류에 휩쓸리는 대신, 저자는 그런식의 주장을 내세우고 요구를 하는 사람들에 맞서서 정말로 진중한 숙고끝에 하는 얘기인지 혹시 그것이 또 다른 휩쓸린 여론에 의한, 정작 너희가 겉으로 내세우는 것과는 정 반대인, 자주성이라곤 없는 결론을 그저 받아들인 결과는 아닌지를 진지하게 묻는다. 처음부터 계속해서 일관되게 말이다.

책의 제목인 ‘선택’은 그런 점에서 꽤나 적절하며 의미심장하다. 책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단어를 실로 투명하게 박아넣었은 것이라서 의외의 여운도 남긴다.

사실, 이 글을 읽으면서 처음 든 생각은 좀 위험하지 않나 하는 거였다. 시대가 시대이기 때문이다. 비록 최근에 쓰여진 것은 아니긴 하나, 그 때에도 꽤 위험을 감수한 출간이었을 것이다. 실제로 ‘여성 권익의 걸림돌’이라고 얘기되며 비난도 받은 모양이다. 그것을 지금에 와 재출간을 한다니, 용기가 대단하다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이것은 그가 이 글에 담은 생각이 이상하거나 잘못되었기에 그런 것은 아니다. 오히려 반대로, 이 글에서도 지적하는 것처럼, 누군가가 정해놓은 새로운 굴레에 어긋나기에 그렇게 느껴지는 것 뿐이다.

스스로의 길과 가치는 남들이 정한 것이 아닌 자기 자신이 선택한 것에 따른다는 이 글의 논지는 특정한 방향과 결과만이 절대적으로 여성 권익을 위한 것이라고 부르짓는 작금의 여성주의보다 차라리 훨씬 더 자주적인 인간주의를 얘기하는 것 같았다.

현재의 페미니즘의 생겨난 과정, 세계 여성사, 그 안에 담겨있는 억압과 차별. 그것은 과연 단지 거부하는 것만으로 벗어나게 되는 것일까. 그것이 진정으로 여성의 의식과 자아를 해방하는 것일까. 그것 자체가 새로운 프레임인 것은 아닐까. 특정 이야기에만 사로잡혀 발끈하지 않는다면, 저자의 근본적인 물음은 생각보다 진지하게 숙고해볼 만하다.

다만, 그걸 묻히게 할만한 요소도 엿보이고, 무엇보다 소설로서의 재미는 느끼기 어렵기에 좋은 책이라고 하긴 좀 어렵다.

이 리뷰는 북카페 책과 콩나무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고 작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