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 그리고 고발’은 씁쓸한 사법 현실에 희생된 무고한 희생자와 그에 무릎꿇은 변호사의 싸움을 그린 책이다.

표지

나름 거창해 보이는 제목을 한 이 책은, 변호사인 저자 안천식이 무려 10년간 18번의 소송을 치르면서 겪은 실제 일화를 담고 있다.

저자는 자신의 법정 싸움 과정과 거기에서 살펴보아야 할 논리들을 책에 꽤 잘 정리했다. 그래서 책 자체로서는 꽤 재미도 있다. 어쩌면 그래서 더 ‘사법 활극’처럼 마무리되길 기대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현실은 시궁창, 달걀로 바위 치기였을 뿐이었다.

시작은 단순한 부동산 계약 문제였다. 그런데 그게 어느새 위조 입증 싸움이 되버리더니1, 결국엔 증인 포섭과 거짓말 싸움이 되어버린다. 돌아가는 꼴을 보면 우습다 못해 어이가 없을 정도다.

처음엔 나도 조심스러웠다. 단순히 독자로서 이 사건에 직접적인 연관이 있지도 않고, 그래서 잘 알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저자는 의뢰인인 기을호의 편에서서 그의 입장을 대변하는 변호사가 아니던가. 심지어 패소한 사건이기도 하고 말이다.

그러나, 책을 보다보면 그건 그저 우려였다고 생각하게 된다. 상대의 주장과 증언, 그리고 증거를 합리적으로 의심할만한 점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반대로 저자의 논리와 주장은 충분히 그럴듯 하다. 애초에 계약서가 진짜임은 상대방이 증명해야 하는 것 아니던가. 그런데도 마치 짠듯이 상대에게 유리한 해석과 편결만을 내리는 모습을 보면서 깊게 한숨을 쉴 수밖에 없었다.

사실, 생각해보면 이건 그리 낯설지만은 않은 것이다. 그들만의 법감정으로 납득할 수 없는 판결을 내리는 모습은 생각보다 쉽게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나 역시 쌍방이 모두 인정한 주장에 대해서 법관이 ‘증거가 없다’며 받아들이지 않는걸 본 적 있다. 그런 내 개인 경험이 있었기 때문일까. 책에서 말하는 억울함과 황당함을 더 짙게 느낄 수 있었다.

한편으론 저자에게 화가 나기도 했다. 그가 저지른 실수들 때문이다. 소송 과정에서 제대로 챙기지 않고 놓친 것들도 그렇고, 왜 법정에서의 싸움만으로 결판을 내고자 그 오랜 세월을 허비했는지도 이해할 수 없어서다. 우직하다기 보다는 미련해 보인다. 그래서 결국 얻은게 뭔가. 거대기업 H건설의 갖은 수작에 놀아나며 번번히 패배만을 맛보았지, 의뢰인 역시 물적으로는 물론 정신적, 육체적으로까지 고통받아야만 하지 않았던가. 안다. 이런 생각도 그 작은 실수들이 없었다면 어쩌면 조금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안타까움 때문이란 걸. 결과가 결국 그렇게 된데에 그저 딱하고 안쓰러울 뿐이다.

책을 덮고 나서, 나는 나의 오랜 의문을 다시 떠올렸다: “대체 법이란 무엇인가.” 사회 구성원들이 공통적으로 가진 정의(正義)를 실현하기 위한 규약이어야 하는거 아닌가? 이미 사회 정의와 어긋나버린, 그들만의 정의(定義)가 되어버렸다면, 대체 현행법의 존재 이유란 무엇인가.

그리고 또 궁금하다. 마치 안드로메다로 가버린 듯한 이 어긋나버린 법감정이 과연 상식에 맞게 변화하는 날이 올 수 있을지.

부정적인 나는 차라리 법 없이 살고 싶다.

  1. 위조 여부는 원래 위조가 아님을 문서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쪽이 증명해야한다. 그런데, 우습게도 이 사건에서는 지속적으로 변호측에 위조 증명을 요구하는 양상을 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