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래곤볼, 일본 제국주의를 말하다’은 일본 사람들안에 부리깊게 박혀있는 제국주의의 흔적과 그들의 성향을 만화 ‘드래곤 볼’을 통해 살펴보는 책이다.

표지

이 책이 처음 내 관심을 끈 것은 물론 드래곤 볼이라는 희대의 작품 때문이었다. 청소년용 배틀물의 하나로 재미있게 봤던 만화였는데, 거기에 대체 어떤 제국주의적인 사상이 담겨있는 것인지도 궁금했고, 그걸 얼마나 그럴듯하게 풀어냈을지도 기대도 되었다.

그리고 그런 점은 꽤 만족스러웠다 일본이나 일본인에 대해 잘 모르는 입장에서 섣불리 이 책의 내용을 긍정하거나 또는 부정할 수야 없었지만, 많은 부분이 충분히 그렇게 볼 만큼 납득가는 분석이 많았다. 가까운 나라고 그래서인지 문화적으로 (특히 일제 이후엔) 비슷한 점이 많은 듯 하면서도 때때로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나 반응을 하는게 기묘하게 느껴지곤 했었는데, 책에서는 그런 것들에 대해서도 상당히 그럴듯한 답을 주었다. 그걸 원작 만화의 내용을 인용해가면 잘 풀어내기도 했다. 그래서 논문과 같은 내용과 형식을 띈 것 치고는 꽤나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물론 그 중 일부는 결론에 맞게 끼워맞춘 것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드는 것도 있기는 했다. 그건 이러한 이야기 자체가 원래 담길 수 있는 그릇이 많기 때문이다. 즉 애초에 하려고만 하면 얼마든지 어거지로 끼워맞추는 것이 가능한 얘기였다는 말이다. 그런 점에서 단지 자신들의 생각만을 펼친것이 아니라 관련 분석 같은것을 참고한 건 좋았는데, 그게 단지 작가들 뿐 아니라 그 외 일반도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만 하다는 걸 보여주어서다.

사실, 어떻게 보면 그런게 만화에 담기지 않았을 거라고 하는 게 더 무리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작가가 만드는, 특히 대중을 위해 만드는 작품에는 그 사회가 갖고있는 공통적인 경험과 사상이 녹아들어가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특히 작가 개인이 아니라 편집자 등 여러명이 함께 만들어가는 게 일본의 만화 제작 방식이기에 더 그렇다. 이런 점은 책에서도 잘 지적하기도 했다.

드래곤 볼을 소재로 삼고 그걸 전면에 내세웠으면서도 후반부에 다른 만화인 지팡구를 언급하는 건 좀 이상해 보이기도 했는데, 그게 드래곤 볼의 장면과 비교되는 장면이 꽤 있다는 점, 그리고 지팡구가 좀 더 직접적으로 그런 얘기들을 그려냈다는 점에서 드래곤 볼에 담긴 내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래서 보고 나서는 꽤 적절한 인용 같기도 했다.

전체적으로 내용은 나름 만족스러웠는데, 그에반해 책의 질은 좀 떨어져 아쉬웠다. 오타나 탈자 뿐 아니라 문법에 안맞는 이상한 문장도 많고, 인용한 만화 장면들은 무슨 폰카로 찍어 붙인건지 질이 아주 조악했기 때문이다. 정식 출판물인데 이건 좀 너무 무신경했던 것 아닌가. 기껏 오랫동안 묵혔다 이제야 발행한 것인데 조금만 더 꼼꼼히 확인하고 퇴고했으면 좋지 않았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