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의 치과의사(龍の歯医者/The Dragon Dentist, 2017)’는 국가의 수호신인 ‘용’을 ‘충치균’으로부터 보호하는 용의 치과의사와 그들이 휘말린 전쟁에 관한 이야기다.

한국어 포스터

사실, 이 애니메이션에서 가장 먼저 내 관심을 끈것은 용의 디자인이었다. 나는 이런 괴물류의 디자인을 정말 좋아하는데, 동양의 신성한 존재로 추앙받는 용에 서양의 강력한 몬스터같은 드래곤이 섞인것 같기도 하고, 무엇보다 에반게리온의 사도처럼 생물로서는 기묘한 구성과 구조를 갖고있는 디자인이 너무 매력적이었다.

거기에 용의 ‘치과의사’라는 컨셉이나, 용의 능력과 충치균의 설정 등도 특이하고 재미있었다.

그러나 이 애니메이션은 용이 등장하는 단순한 판타지가 아니다.

영화 내용을 담고 있으므로 주의 바란다.

애니메이션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것은 크게 2가지, 전쟁과 운명이다. 이것을 각기 다른 등장인물들로 풀어 나가는데, 주로 치과의사들은 운명을 그 외 사람들은 전쟁을 맡았다. 원래 이 둘은 엄격히 구분되어 있었으며 그것은 나름 철저히 지켜졌다.

그런데, 군인이었으면서 환생을 통해 치과의사가 되는 ‘벨’이 등장하면서 그 균형이 깨진다. 벨은 원래 군인이었으므로 전쟁과 밀접히 관련이 있고 실제로 극중에서도 계속해서 전쟁과 연관된다. 그는 또한 치과의사이므로 운명과도 계속 충돌하는데, 이는 그가 정식으로 치과의사가 된 자가 아니라서 처음엔 ‘운명’이라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긴 커녕 오히려 다른 치과의사들이 자기가 죽는 순간을 알면서도 그 순간을 피하려고 하지 않는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전쟁에서도 이질적인 존재였던 그는 치과의사로서도 이질적인 존재인 것이다.

하지만, 그건 겉으로 보이는 모습만일 뿐, 그는 그 누구보다도 모든것에 순응하며 사는 인물이다. 그는 전쟁이라는 자신이 납득할 수 없는 세태에도 순응해 군인이 되었고, 환생한 후에도 적국의 용을 지키는 치과의사로서의 삶을 살며, 결국엔 그렇게 이해하지 못하겠다던 운명대로 자신의 삶을 마감한다. 그렇기에 얼핏 부 주인공처럼 보이는 ‘벨’은 실제로는 이야기의 화자 정도에 불과하다.

이런점은 주인공인 노노코도 크게 다르지 않다. 운명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주어진 운명대로 살아가는 노노코는 그래서 매력적이지 않다.

정작 매력적이며 주인공이어도 손색이 없는것은 주인공들과 대척점에 있는 인물인 시바나와 블랑코다. 하지만, 이들의 진면목은 후반부에 드러나는데다 표면적으로는 주인공도 아니라서 제대로 다뤄지지 않아서 그들의 매력은 좀처럼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기는 커녕 괜히 불편한 떡밥만을 남기기도 한다. 시바나는 대체 어떻게 충치균과 융합할 수 있었나 하는것도 그렇고, 블랑코는 대체 무엇의 가호를 받는가 하는것도 그렇다. 용과 환생에 대해 그가 내뱉던 대사들도 어떤 사연과 배경이 있는 듯한데, 정작 극에선 아무 설명을 않기 때문에 뭔가 어설프게 끝난다는 느낌만 던져 준다. 이야기의 절정과 결말이 의외로 황당하고 허무한 것이어서 더욱 그렇다. 극 이곳 저곳에 과거와 미래의 연결점을 놓아두는 등 신경쓴것 치고는 허술한 처리다.

원래 약 7분짜리 단편이었던것을 TV 방영을 위해 길게 늘려 만든것이라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걸까. 정말로 딱 TV 시리즈의 1화와 12화를 붙여놓은 듯한 느낌도 든다. 이렇게 중간이 빈 느낌이 드는건 시청자가 상상으로는 채워넣을 수 없는 공백도 있는데다, 후반의 전개마저 매끄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연히 그 공백을 충분히 채웠다면 다르지 않았을까 싶은거다. 지금으로서는 오히려 용과 과련된 뭔가 어두운 뒷구석이 있으나, 그 와중에도 밝은 미래를 바라보는 것 같은 주인공을 그린 단편쪽이 훨씬 나았다. 처음부터, 2화짜리 스페셜이 아니라, 장편 TV 시리즈로 만들었으면 보다 나았을 것 같아 아쉽다.

극 외적으로도 뭔가 걸리는게 많다. 일본풍을 적극적으로 사용한 용을 가진 나라와 아무리봐도 서양인 전쟁 상대국은 전투기와 전투함이 있는 시대배경과 어우러져 다분히 제2차 세계 대전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전쟁에서 진 나라는 그 전쟁에서 이기는 가상 역사를 상상하곤 한다. 미국이 베트남 승전이라는 가상 역사를 그래픽 노블로 그리기도 했던것처럼 말이다. 이 애니메이션도 역시 그런 냄새가 난다. 보기에 따라선 군국주의적이라 할만한 면모도 꽤 나오는데, 용의 나라를 대놓고 일본으로 그렸기에 더 그래 보인다. 그래서 솔직히, 일본의 전쟁 피해국인 한국 태생으로서, 불편함없이 순수하게 판타지 작품으로 감상 할 수만은 없었다.

혹자는 반전(反戰: 전쟁을 반대함) 같은 얘길 하는 사람도 있더라만, 용을 끌고다니며 공격하고 다니는 시점에서 이미 반전 따위는 물건너간 것 아닌가? 영화 만으로는 반전 메시지 같은걸 찾기 힘들다.

결론적으로, 용이라는 신적 존재와 충치라는 괴물, 그리고 그 사이에 있는 치과의사라는 설정 자체는 나쁘지 않고 미래를 짐작케하는 복선이나 몇몇 장면에서의 연출도 꽤 훌륭한 점이 있었으나, 이야기가 썩 깔끔하게 짜여진건 아니었고, 컨셉 디자인과 달리 영상으로 보는 용과 충치들도 그렇게까지 매력적이진 않았다. 그렇다고 별로라는 것은 아니나, 좋다고 하기엔 꽤 애매하다.

여러가지 기대를 많이 했으나, 결국 기대에는 못미치는 애니메이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