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드류 조지’의 ‘길가메시 서사시’는 수메르의 도시국가 우르크 왕의 이야기를 그린 서사시다.

표지

인류 최초의 신화로 일컬어지는 길가메시 서사시는 또한 인류 최초의 영웅 서사시이기도 하다. 서사시로 가장 유명한 일리아스보다 무려 1500년 가량 앞선 이 시는 꽤나 엄격한 형태를 띄고있다고 하는데, 아쉽게도 그건 언어의 구조나 운율 등이 크게 다른 한국인에게 잘 와닿지 않는 부분이다. 이 책의 원전은 나름 그런 시적인 형태도 신경쓴 듯 하다만 한국어 번역본은 형태시로서의 의미는 크게 찾기 어렵다.

그런 반면에 시의 특징들은 여전히 남아있어서 때로 같은 말이 반복된다던가 생략이나 비유가 사용된 부분들도 있어서 길가메시 서사시는 의외로 잘 읽히지는 않는다. 앞뒤 문맥을 통해 유추하거나, 다른 판본등을 통해서 일부 매꾸기도 했지만 여전히 유실된 부분이 여럿 남아있기에 더 그렇다. 그래서 그리스 신화처럼 매끄럽고 쉽게 잘 읽히는 신화를 기대했다면 조금은 실망스러울 만하다.

이는 애초에 이 책이 길가메시 신화를 재미있게 전달하기 위한 책이 아니라, 길가메시 서사시 원전을 가능한 그대로 전달하는데 목적을 둔 것이기 때문이다. 누락된 부분을 상상력을 발휘해 채우지 않고 그대로 둔 것이나, 정확하지 않을 수 있는 부분을 그 정확성의 정도에 따라 표기를 달리한 것도 그런 이유다. 원전의 정확성에 신경을 쓴 만큼 이 책은 길가메시 서사시의 원형이 궁금한 사람들에겐 의미가 있다.

학술적으로 서사시 자체에 관심이 있거나 또는 수메르 신화에 흥미가 있는 사람 뿐 아니라 폭넓게 신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도 이 서사시는 꽤 의미가 있는데, 다분히 다른 신화들에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이는 요소들을 많이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신화가 대대로 물려온 순수한 것이 아니라 다른 문화와 충돌하며 그에 따라 변화해온 픽션으로 일종의 정치적 산물이기도 하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신이란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일종의 아이돌임을 짐작케 한다.

서사시의 내용은 꽤나 자극적이고 흥미롭다. 숫자 등에 상징적인 표현도 많아 해석은 어려우나, 순수하게 문학적으로 읽더라도 충분한 재미가 있는 편이다. 그러나, 서사시라는 형태의 난해함이나 누락된 부분의 아쉬움 등을 생각하면 수메르 신화를 가볍게 접해보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별로 적합한 책이 아니다.

이 리뷰는 북카페 책과 콩나무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고 작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