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출’은 탈출을 주제로 한 SF 단편 다섯개를 담은 소설집이다.

표지

표제작인 ‘탈출’은 강제적으로 행동을 제약하는 상황에서 탈출이라는 시술을 통해 벗어나는 이야기를 그렸다. 소설에서는 그 제약을 현실 연애로만 설정함으로써 가볍고 조금은 로맨틱한 아기자기한 이야기가 됐다.

하지만 소설은 보는 내내 그 뒤에 있는 것, 다시말해 그보다 훨씬 심각한 것을 제약하는 디스토피아를 자연스레 떠올리게 한다. 과연 정말로 제약을 하고 싶었다면 그렇게 쉽게 제거할 수 있게 만들었을까. 받아들이고 살거나 제거하고 죽거나 양자택일밖에 없을 방식을 생각했을거다. 그런 점에서 소설 속 제약은 의도된 시험처럼 느껴지며, 아이들의 탈출 역시 가벼운 일탈처럼 보인다. 확실한 줏대없이 휩쓸려 시술을 받는 모습 때문에 더 그렇다.

‘로봇 당번’은 현실에서도 꽤나 자주 마주하게 되는 상황을 그렸기에 이입해서 짜증난다. 그것을 계속해서 더해가며 하나씩 쌓는 것도 잘 해서, 마지막에 해소됐을 때는 괜한 시원함을 느끼기도 한다. 역겨운 부당함에서 탈출하는 방법은 결코 나 혼자만 괜찮으면 되는 게 아니라 누구도 그렇게 되지 않도록 만드는 것임을 잘 얘기한다.

‘아메바리아’는 얼핏 탈출이라는 주제와 좀 동떨어져 보인다. 그러나, 심리적인 장벽에서의 탈출이라는 것을 잘 보여주는데다 그것을 꽤나 유쾌한 상상력으로 그려내 읽는 맛이 있다.

‘보호감찰봇 리베라’는 아동 문제를 꽤나 잘 보여준다. 이야기는 다소 뻔하다만 아이가 스스로 부모를 떠날 수 있게 도와주는 제도 같은 건 꽤 흥미로웠으며, 가족 문제와 인간성에 대해서도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외롭다 하면서도 점차 1인가구가 많아지는 시대, 어쩌면 가까운 미래에 정말로 AI가 더 이상 인간에게선 느낄 수 없는 인간애를 주는 반려 가족이 되지 않을까. 기대되는 한편, 씁쓸하다.

자전적인 소재를 이야기로 풀어낸 ‘위험한 페르소나’는 소재가 소재이니만큼 다소 불편하다. 조금은 억지스러운 면도 있어 더 그렇다. 저자는 그걸 타협없이 끝까지 밀어붙이는데, 덕분에 다른 건 차치하고라도 주인공의 심경과 깨달음은 잘 느껴진다.

우리에겐 탈출할만한 것들이 새삼 많은 것 같다. 탈출은 늘 갈망하게되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늘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다 주는 것은 아닌데, 그나 그 방향만은 그릇되지 않은 것이기를 바래본다.

이 리뷰는 북카페 책과 콩나무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고 작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