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Feel)’은 인공지능 로봇과 인간의 느낌을 흥미롭게 그려낸 SF 소설이다.

표지

인공지능이 고도로 발달한 미래의 어느 날, 우연히 설계에서 어긋난 인공지능이 등장하면서 인간들의 통제에서 벗어난 인공지능에 의해 오히려 지배를 받게되는 디스토피아를 그린 이 소설의 상황 자체는 사실 그렇게 특별할 게 없다. 아니, 오히려 식상하다 할만큼 많이 우려먹힌 이야기다.

그런데도 이 소설이 그렇고 그런 아류작으로만 그치지 않는 것은 ‘느낌’이라는 것을 인간만의 특징으로 설정하고 인공지능들이 그것을 탐하게 만든 아이디어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 아이디어가 엄청 기발한 것은 아니다. 인간성이 쉽게 나타나기 힘든 배경을 설정하고 그 속에서 어떻게든 그것을 지켜나가는 소수의 이야기를 통해 진정한 인간성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하는 한편 그것을 추구하는 것이 왜 중요한가를 새삼 깨닫게 하는 식의 이야기는 SF의 왕도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더더욱 이야기를 통해 그것을 얼마나 그럴듯하고 공감할 수 있게 그려내는가가 중요한데, 이 소설은 그것을 꽤 잘했다.

거기에는 필 7 단계의 설정이 주요했는데, 마치 인간이 자라면서 알아가는 감정을 단순한 것부터 복잡하고 사회적인 것까지 나열한 것 같은 이 7가지는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다음 단계로 이끌어줄 뿐 아니라 왜 인공지능들이 그런 행동을 하게 되는가도 손쉽게 설명해준다.

인공지능들이 각 필 단계에서 보이는 행동들은, 애초에 그것이 인간의 것을 표현한 것인만큼, 인간들에 대한 비판이기도 하며, 자연스럽게 무엇이 더 나은 인간인가 하는 걸로도 이어진다.

설정과 이야기가 꽤나 괜찮게 짜여진 셈이다.

아쉬운 것은 후반부 연출이 별로 좋지 않으며, 결말에 이르는 이야기도 그리 매끄럽지만은 않다는 거다. 이건 이렇게 표현했다면 또 이 부분엔 좀 더 이런 설명을 덧붙였다면 어땠을까 싶은데, 그러지 않다보니 생각보다 의아함을 남기거나 급전개처럼 보이는 부분이 의외로 눈에 띈다. 엔딩도 솔직히 적당히 얼버무린 느낌이 없지 않다. 이런 점들은 그 전까지의 빛나던 것들을 조금은 바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