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들린 밴 드라닌(Wendelin Van Draanen)’의 ‘플립(Flipped)’은 두 소년, 소녀의 첫사랑을 담은 소설이다.

표지

이 소설을 뭐라 설명하면 좋을까. 한마디로는 부족할 것 같다. 반짝이는, 미소짓게 만드는, 귀여운, 인생의 지혜를 담겨있어 깊은 여운도 남기는 그런 책이다.

초반은 다분히 김유정의 단편소설 동백꽃(1936 발표작)을 떠올리게 한다. 두 소년, 소녀의 사랑 이야기라는 점이 그렇고, 풋내나는 첫사랑을 그렸다는 것도 그러하며, 브라이스가 줄리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나 태도하며, 줄리의 (브라이스 입장에서 보기엔) 츤데레같은 면들도 그러하다. 소설 속에서 주요 장치 중 하나로 사용하는 ‘달걀’도 다분히 동백꽃의 ‘감자’를 떠올리게 한다. 그래서 처음 이 소설은 동백꽃을 장편으로 쓴다면 이렇지 않을까 하는 느낌도 들었다.

그런 한편, 단편이라 두 사람의 관계에만 집중했던 동백꽃과는 달리, 이 소설은 ‘콩깍지’라는 것에 대해서, 사람의 진중함과 사람 사이의 관계, 그리고 나아가 삶에 모습에 대해서도 얘기하며 생각해보게 만든다. 그걸 아직은 어린 두 아이가 변화해가는 모습을 통해 보여줌으로써 성장 소설의 모양새도 띈다.

동백꽃이 두 사람의 관계를 한쪽(남자)의 입장에서만 기술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보여줬다면, 줄리와 브라이스의 입장을 번갈아가며 보여주는 것도 다른 점이다. 또래에 비해 (정확하게는 브라이스에 비해) 훨씬 조숙하고 생각이 깊은 줄리와 그에 비하면 유치한 아이같은 브라이스를 대비해서 보여주는 것은 마치 서로 다른 두 장르를 넘나다는 것 같은 느낌을 들게하기도 한다. 둘이 서로 다른 면을 보는 것도 꽤 재미있는데, 그게 둘 사이에 어떤 오해나 착각을 남기기 때문이다. 착각물의 성격도 띄고있는 셈이다.

그래서 각자의 입장을 기술하며 전에 말하지 않았던 것들을 새로 얘기하기도 하고, 또 둘이 같은 일을 겪으면서도 서로 얼마나 다른 것을 보고 받아들이며 생각하는지를 나타내기도 한다. 둘의 이 간극은 꽤 큰데, 새삼 사람이란 얼마나 편협하고 또 다른 존재인지 느끼게 된다.

두 가족(엄밀히 말하면 세 가족) 사이에서 일어나는 갈등과 그 과정에서 오가는 대화나 감정의 흐름을 통해 생각해볼 거리를 던져주는 것도 좋았다. 특히 쳇 할아버지의 말들은 하나 하나가 묵직해서 여러번 곱씹어보게 만들었다.

누구나 일생에서 단 한 번 무지개 빛깔을 내는 사람을 만난단다. 그런 사람을 발견하면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게 되지.

단순한 연애 소설이 아니라 여러 면들이 한데 섞여있으면서, 그 중 어느 하나가 특별히 튀지않고 잘 어우러진 것도 좋았다. 그래서 초반엔 그저 두 아이들의 얘기를 보면서 잔잔히 미소짓다가, 다 읽고나서는 묵직한 여운이 남기도 했다. 참 잘 만든 작품이다.

아쉬운 것은 ‘플립(Flipped)’을 제대로 번역하지 않았다는 거다. 단어가 여러 의미가 있고, 실제로 작품 내에서도 중의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있어 쉽지 않았던 것 같은데, 그렇다고 그냥 독음으로 써버리니 소설을 보면서는 전혀 그 뜻이나 의미가 와닿지가 않았다. 사전도 뒤져보고, 후기도 보고, 해설도 읽어야 비로소 느낌이 오는 번역이라니, 그걸 과연 번역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번역이 되었다면 소설을 볼 때 더 그 느낌이 살았을 것을, 부담스럽다고 그냥 던져버리다니 못내 아쉽다.

작품이 좋아서인지 동명의 영화(Flipped, 2010)로도 제작이 되었는데, 엄청까진 아니어도 나름 괜찮은 평을 받은바 있다. 영화는 소설과는 조금 다른 부분도 있다는데, 서로 비교해서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