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로세 미이(広瀬 未衣)’의 ‘너와 만날 수 있었던 4%의 기적(君に出会えた4%の奇跡)’는 교토를 배경으로 벌어지는 미스터리한 로맨스를 그린 소설이다.

표지

결혼을 앞두고 고향인 교토에 돌아온 아카리는 문득 어린시절 일기를 보다가 지금은 전혀 기억나지 않는 한 소년과 당시 친하게 알고 지냈다는 것을 알게된다. 심지어 일기에서마저 이름이 지워진 그 묘한 소년에 대해서 어렴풋이 기억하는 아카리는 교토의 풍경과 문화, 그리고 블루문(Blue Moon)이라는 특별한 이벤트를 만나면서 잃어버렸던 기억과 과거를 되찾게 된다.

나 뿐 아니라 다른 사람, 심지어 기록에서까지 깨끗하게 지워진 존재를 찾는다는 점에서 미스터리한 느낌을 주지만, 이 소설은 어디까지나 한 소년과 소녀의 사랑을 그린 로맨스 소설이다. 작가 또한 그 부분에만 집중하고 있어서, 완전히 잊혀진 소년이 누구인지 알아가는 것이라던가 그의 정체를 추리해는 등에는 전혀 힘을 쓰지 않는다.

잃어버린 기억도 아카리가 부던한 노력을 통해 얻는 것이 아니라 한없이 우연에 가까운 일을 통해 이뤄진다. 선택지가 없는 단일 노선의 강제 이벤트인 셈이다. 이게 이 둘의 만남을 운명과 같은 것으로 보이게도 하는데, 안타까운 만남 뒤의 미래가 더욱 그러한 면을 강조한다.

하지만, 로맨스 면이 딱히 특출한 개성이나 장점이 있는 것은 아니다. 전형적인 ‘소년, 소녀를 만나다’ 식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들의 만남도 짧아서 특별한 이야기가 벌어지지도 않는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로맨스만 떼어놓고 보면 조금 빈약하다는 느낌도 든다.

대신 그 부족함을 교토로 채워넣었다. 주인공인 아카리가 오랫만에 고향이 교토에 왔다는 것과, 소년이 교토 경험이 없다는 것을 살려서 교토의 여러 볼거리와 자연, 그리고 그곳에서 즐길 수 있는 문화/행사 등을 제대로 실었는데 단지 문장 만으로도 그걸 아름답게 그려내서 이들 사이의 모자란 감성적인 부분을 채워준다.

이런 지역적이고 시각적인 묘사는 장점이면서 또한 단점이기도 하다. 다르게 보면 이게 로맨스인지 관광 안내문인지 헷갈리기도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책은 교토의 여러 풍경들을 굉장히 세밀하고 시각적으로 묘사했다. 교토에서만 볼 수 있는 거리, 건물, 하늘, 심지어 빙수나 떡 같은 먹거리까지. 심지어 그 분량도 꽤나 많다. 오죽하면 책을 보고나서 교토를 간접체험한 느낌마저 들까.

그래도 사람의 마음, 감정이라는게 말이나 행동으로는 도통 표현하기 어렵다는 걸 생각하면, 이러한 묘사가 그들이 나눴을 경험과 마음을 짐작케 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게 짧았지만 강렬했던 둘의 로맨스에 조금 공감을 가게 만들기도 한다. 교토 관광 안내도 둘의 로맨스에 비해 과하지는 않으며, 읽을 때 거부감이 없을 정도로 이야기와 잘 어우르기도 했다.

설정 면에서는 조금 판타지나 SF적인 요소를 갖고 있어서 이들의 운명적인 만남을 강조하는데 사용하기도 했는데, 솔직히 썩 좋지는 않았다. 막말로 ‘그거랑 그건 다르지’란 생각을 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게 이성이 아닌 감성에 호소하는 로맨스라 더 그렇다. 차라리 소설에서도 살짝 언급했던 다른 방식으로 둘의 인연으로 그렸다면 훨씬 나았으련만. 독자가 느끼게 될 이 기묘한 거부감 까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다.

소년이 교토로 오게 된 이유도 좀 황당했다. 너무 뜬금없기 때문이다. 이건 순전히 작가의 개인적인 지역 감정을 지나치게 묻힌 것처럼만 보였다. 최소한 소년이 이곳 교토에 대한 정보를 어떻게 얻게됐고, 그래서 전부터 오고 싶어 했다는 식이었다면 좀 나았으련만 꼼꼼함이 부족했다.

번역은 전체적으로 무난하나, 교토 사투리를 전혀 반영하지 않아서 등장인물들이 나누는 사투리 관련 대화는 모두 뭉개져버렸다. 다 같이 서울말을 하는데 뭐 어쩌라는 건지. 딱 맞아 떨어지는 것은 아니나 한국에도 여러 사투리가 있으니 그걸 적당히 섞었더라면 어땠을까 아쉬움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