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키요시 리카코(秋吉 理香子)’의 ‘유리의 살의(ガラスの殺意)’는 기억 장애를 가진 살인 자수자의 이야기를 그린 미스터리 소설이다.

표지

소설을 보고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영화 ‘메멘토(Memento, 2000)’다. 주인공이 앍고 있는 장애가 영화에서의 것과 동일하기 때문이다. 가상의 알려지지 않은 질환이 아니라, 실제하는 질환을 소재로 사용했기 때문에 작품 속에서 기억과 관련해 주인공이 보이는 모습도 어느정도 그와 비슷하다.

자연히 그의 말도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의심을 할 수밖에 없고, 이야기의 대부분은 범행에 대한 전체 과정에 대해 가설을 세우고 그것을 증명하거나 부정해 나가는 방식을 취하게 된다. 소재에서부터 예상됐듯 이 과정에서 반전을 보여주기도 하며, 이게 꽤 재미있었다.

그렇다고해서 신선하거나 상상도 못할 것이었다거나 하는 건 아니었다. 반전에 앞서서 그러한 가능성을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충분하게 깔아두기 때문에 오히려 ‘그럴 줄 알았다’는 반응이 더 먼저 나온다. 그래서 반전물로서의 확 깨는 맛이랄까, 그런 것은 그리 없는 편이다.

그래도 끝까지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기억 장애가 있는 주인공의 생각과 행동이 왜 그렇게 되는지를 꽤 잘 그렸기 때문이다. 짧은 주기마다 새롭게 되새김질해야하는 주인공은 그 자체만으로도 계속해서 반전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언제든 필요할 때에 갈등을 유발하고 고조시키는가 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손쉽게 해소시켜버리기도 한다. 이게 이야기를 더욱 널뛰는 듯 느끼게 만든다.

어떻게 보면 저자가 원하는 대로 이야기를 몰아가기위한 일종의 ‘데우스 엑스 마키나’ 같기도 한데, 거기에 작은 장치를 더해 어색함을 덜고 흐름에도 위화감이 들지 않게 했다.

개중엔 좀 불필요하거나 과해서 어색한 것도 있기는 하다만, 등장인물들이 가진 사연 역시 사건과 그 주변 배경에 조금씩이라도 물려있도록 잘 구성했다.

이야기 마무리도, 좀 급진적인 면이 없는 건 아니나, 적절하게 잘 지었다. 만약 더 했다면 사족같거나 늘어져 보일 수도 있었을 것 같다.

번역은 좀 아쉽다. 전체적으로는 딱히 이상한 것도 없고 잘 읽히기도 하나, 몇개 문장과 대사에서 전에 없던 단어를 들먹여 어색하게 튀고 수월히 이어지지 않는 게 있기 때문이다. 원문 자체가 문제인 것인지 번역 실수인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어느쪽이든 오점은 오점이다.

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고 작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