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 속으로 직진’은 자살 유가족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이다.

표지

사별은 도저히 이겨낼 수 없을 것만 같은 슬픔을 남긴다. 그것이 사건이나 사고에 의한 것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 중에서도 자살은 어쩌면 되돌릴 기회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 어쩌면 내가 알아주지 못해서 내가 챙겨주지 못해서 그렇게 된 것은 아닐까 하는 죄책감 같은 걸 남기며, 모든 삶과 시간을 따라다니기 때문에 더욱 짙은 상처로 남는다.

이들의 상처가 쉽게 아물 수 없는 것은 상처 자체가 쉽게 사라지지 않는 평생 지워지지 않을 그런 것이라서이기도 하지만, 또한 그들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적기 때문이기도 하다. 함부로 공감을 얘기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심지어는 그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조차도 모른다는 얘기다. 그래서 누군가는 그들이 혹시 더한 상처를 받진 않을까 조심스러워하며 피하기도 하고, 어떤이는 앞으로를 생각하며 털어내기를 기원하기도 한다만 그 어떤 것도 적절하다고 하긴 어렵다.

어쩌면 그들에게 공감할 수 있고 또한 서로 위로할 수 있는 것은 같은 아픔을 가진 유가족 뿐일지도 모르겠다. 나아가서는 슬픔을 딛고 일어서는 것 역시 말이다.

그러니 소설이 그러한 사람들을 그리며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되는 이야기를 담은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 부분은 저자가 실제로 만나봤던 사람들의 사연을 모태로 해서 그런지 상당히 사실성이 높다. 그들의 아픔이나 그것을 서로 나누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이것이 자연스럽기 때문에 유가족들의 심정에도 잘 이입이 된다.

방황하는 10대들을 통해 성장을 그린 것도 나쁘지 않다. 다만, 그를 두드러지게 하기 위해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모지수’에게 이기적인 가해자의 일면을 넣은 것은 거리낌이 있다. ‘모지수’와 ‘여자’가 얽힌 일화들도 과한 측면이 있는데, 모든 것에 잘못 대처하는 것이 단지 방황하는 지수만이 아니라 여자는 물론 여자의 딸, 심지어 아빠까지 그러해서 이들 가족의 이야기는 좀 이질적으로 튀고 현실감이 없다. 후반부에서의 갈등 해소가 다소 싱거웠기에 더욱 이들의 관계가 그렇게까지 치닫을 문제였던가 의아하게 한다. 차라리 ‘여자’와의 불화는 빼고 유가족들과의 이야기에만 집중하는게 더 나았겠다.

이 리뷰는 북카페 책과 콩나무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고 작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