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탕’은 시간여행이 가능해진 미래의 어느 날, 식당보조로 살아오던 주인공이 일하던 가게 사장의 바람으로 곰탕의 제조 방법과 그 재료를 조달하러 과거로 가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린 소설이다.

표지

시간여행 이야기는 그동안에도 많이 있었다. 그만큼 시간여행이 재미있고 다양한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좋은 소재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야기들은 대게 2가지 형태를 띠는데, 하나는 먼 미래에 기술이 발전해 시간여행 장치를 만드는 데 성공하는 SF물이고, 다른 하나는 개인이 가진 특수한 능력으로 시간여행을 하는 판타지물이다. 이 중 곰탕은 전자에 속한다.

다만 좀 특이한 게 있다면, 기존의 이야기들과는 다르게 시간여행 기술이 아직 미완성된 듯한 모습을 보인다는 거다. 시간여행을 하려면 목숨까지 걸어야 한다는 게 그렇다. 그래서 특정 세력이나 일부 갑부나 천재 대신, 돈 때문에 목숨까지 걸어야 하는 소시민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부가적으로 시간여행을 함부로 할 수 없게 하는 억제력도 돼주므로, 설정상으로도 썩 나쁘지 않다. 다만, 어쨌든 과거로 가면 미래가 크게 바뀔 수도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듯해 좀 이상했다. 생판 남을 보냈다가 원래의 ‘의뢰’가 아닌 제 개인의 욕망으로 과거를 조작하면 어찌할 건가. 이런 것에 대한 생각이나 제도가 없는 것도 시간여행이 막 만들어진 상태임을 짐작게 한다.

그런데도 굉장히 먼 미래에나 나올법한 미래 아이템들이 나와서 의아하기도 하다. 주인공들이 온 미래는 작중 배경인 현대(2019년)에서 40년 정도밖에 안 지난 근미래(2063년)인데, 아무리 현대에선 쉽게 보기 힘든 장치로 벌어지는 사건이 필요했다고는 하나 좀 무리한 게 아닐까. 도저히 40년 새에 만들어질 물건 같지 않다. 미래 아이템 자체도 ‘미래의 물건’이라기 보다는 ‘마법의 물건’에 가까워 더 그렇다. 그나마 완벽한 모습은 아니라 급진적인 사건이 있었다면 ‘프로토타입’ 정도까지는 어떻게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만. 그렇더라도 그걸 현대 사람이 어떤 물건인지 알아보는 것은 별로 설득력이 없다. 그 비슷한 게 이미 만들어지지 않은 이상, 그걸 무슨 수로 알아보나; 시간여행의 위험성도 그렇고 근미래에서 왔다는 것도 메인인 ‘우환’의 이야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겠지만, 그 덕에 조금은 억지로 끼워 맞춘 느낌도 든다. 차라리 현대를 현재(2018년)보다는 더 미래로 설정했다면 그나마 낫지 않았을까 아쉬움이 남는다. 그랬다면 시중엔 개발 중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누군가 이미 만들었다든가 하는 식으로 생각할 수도 있었을 텐데.

이렇게 SF 설정은 조금 아쉬웠지만, 이야기는 별로 그렇지 않았다. 여러 인물이 나오면서 서로 다른 이야기가 동시에 진행되는데, 이것들이 하나하나 모두 흥미롭다. 이 중 하나는 SF물 같은데, 다른 것은 범죄물 같고, 주인공 중 하나인 우환의 이야기는 성장 & 가족 드라마를 보는 것 같다. 그래서 마치 시간여행물에서 볼 수 있는 웬만한 것들은 다 담은 느낌도 든다.

이것들은 또한 각자가 서로에서 걸쳐있으면서 잘 어우러져 가기도 한다. 그래서 뒤에서는 하나의 큰 이야기로 합쳐질 것 같아, 그게 또 어떤 시너지를 낼지 은근히 기대도 된다.

1권에서는 그런 각자의 이야기와 그게 서로 엮이게 될 것임을 암시만 하면서 끝이 난다. 작은 반전이라 할만한 것도 여기서는 아직 충분히 짐작할만한 수준이다. 대신 이제까지의 이야기와 복선들을 보면서 결말이나 숨은 이야기들을 상상해보게 되는데, 과연 내가 상상한 것과 작가의 이야기가 얼마나 들어맞을지 궁금하다.

이 책의 저자 김영탁은 영화감독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런지 소설 곰탕도 자연스레 영화 장면을 그려보게 한다. 그의 영화 ‘헬로우 고스트(2010)’는 아쉬운 점도 있었지만, 전체적으로는 꽤 괜찮았었다. 특히 한국 영화에서 늘 아쉽게 생각했던 복선과 후반 처리가 좋았었다. 그래서 곰탕 역시 2권에서 어떤 이야기와 완결을 보여줄지 더 기대된다.

아직 설레발이지만, 영화나 만화로 만들어도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