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파니 D. 잭슨(Tiffany D. Jackson)’의 ‘그로운(Grown)’은 그루밍 성범죄를 소재로 한 스릴러 소설이다.

표지

초반만 보면 대체 이야기가 어떻게 이어지려는 건지 좀 의아할 수 있다. 사건을 연상케하는 단상 뒤로, 마치 동화나라 신데렐라 스토리같은 이야기가 곧바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게 전혀 다른 이야기가 아닌, 단지 시간차만 있는 같은 이야기임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기 때문에 과연 이게 어떻게 그렇게 되는 건지 궁금하게 한다.

이건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점차 드러나게 되는데, 그걸 조금씩 쪼개고 ‘비트 주스’와 거기까지 이르게 된 과거의 단편을 쌍으로 묶은 것으로 각 파트를 동일하게 구성하고, ‘지금’을 조금씩 재생하면서 ‘그때’의 일들을 돌아보는 식으로 만든건 꽤 괜찮다.

현실에서 동화, 그리고 다시 현실로 되돌아오는 분위기 전환도 좋다. 현실 후의 동화는 그게 더 아름다운 것처럼 보이게 하며, 마찬가지로 그 이후의 현실을 더더욱 추악한 것으로 보이게 한다.

다만 아쉽게도 그 사이를 채운 것은 좀 뻔하고 충분하지도 못하다. 남녀가 엮인 일인데다, 주요 인물들이 다소 맹목적인 모습을 보였기에 어떻게 될지는 일찍부터 냄새가 났다. 그래도 최근 많이 쓰인 소재라 다소 피로한 것일 뿐 그것 자체가 문제인 것까지는 아니라, 그 변화를 자연스럽게만 연결했다면 그래도 괜찮았을텐데 그러지 못했다.

적어도 구린 속내를 은근히 풍기다가 드러난다거나 할 줄 알았지, 이렇게 극단적으로 획 바뀔줄은 몰랐다. 그래서 캐릭터 변화가 좀 뜬금없어 보인다. 문제는 그게 주요 캐릭터다 보니 단지 해당 캐릭터 뿐 아니라 상대 캐릭터까지도 이상해 보이게 한다는 거다. 딱히 감내해야만 할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닌데 대체 왜 그렇게까지 받아들이나 싶어서다. 보통은 그런식이면 한순간에 현타가 오면서 확 깨지 않나?

급작스런 변화는 이중성과 역겨움을 부각시키기도 한다만, 그걸 그대로 받아주는 인물에 공감하지 못하게도 하고, 이야기의 사실감과 이야기에 대한 몰입도를 크게 떨어뜨리기도 한다.

그래서 거기가 이 소설에서 가장 중요했던 지점이 아닌가 싶다. 이것 때문에 이후에 이어지는 이야기들도 좀 붕 뜬 무엇가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주인공의 처지도 그렇고, 그녀에게 행해지는 그루밍과 가스라이팅도 썩 그럴듯한 무언가로 보이지가 않았다.

오히려 의심의 여지가 다분한 것까지 무리하게 끼워맞춘듯 억지스러워 보였다. 이것도 그럴만한 심적인 공황상태에 빠져있다는 것을 미리 깔아두었다면 설득력 있었겠다만 그런 빌드없은 거의 없었을 뿐더러 반대로 이상한 정황을 보고 의문을 품는 장면같은 건 여럿 있기에, 그런데도 이렇게 흘러가는 이야기가 썩 자연스럽게 읽히지 않는다.

실제 사례가 있는 꽤나 뜨거운 논란 거리를 소재로 한만큼 그 추악한 면을 마주하고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하려는 의도는 자체는 나쁘지 않다. 그러나, 그런 것들을 나열하듯 던지면서 보여주는 것에 보다 집중한 느낌이지 거기까지 이르고 또 이어지는 서사는 제대로 쌓은게 아니라서 오히려 반대측의 의견을 떠올릴만한 의아함도 드는만큼, 소설로서의 완성도와 그를 통해 전달하려는 사회적 메시지 모두 결과적으로는 좀 아쉽게 된 것 아닌가 싶다.

이 리뷰는 이북카페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고 작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