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구치 사토루(山口 悟)’ 원작, ‘히다카 나미(ひだか なみ)’ 그림의 ‘여성향 게임의 파멸 플래그밖에 없는 악역 영애로 환생해버렸다(乙女ゲームの破滅フラグしかない悪役令嬢に転生してしまった…)’는 여성향 게임 악역 영애물의 시초라고 하는 동명의 라이트노벨을 원작으로 한 만화다.

커버

파멸이 예정된 악역이 그것으로부터 벗어나려고 고군분투한다는 설정이나 그를 위해 갖은 공작(?)을 벌이는 것 자체는 생각보다 단순하지만, 그런데도 재미있다는 점이 꽤 놀랍다. 그만큼 등장인물들을 매력적으로 잘 설정했기 때문이다.

무려 전생의 기억을 깨우쳤는데도 불구하고 작중 나이대의 흔한 어린 아이 같다 못해 때로는 오히려 뒤떨어지는 듯한 모습도 보이는, 머리가 여러모로 순수한 주인공이나, 단지 외모 뿐 아니라 조금씩 다른 배경과 성격을 가진 주변 인물들도 그렇고, 주인공이 그들과 만나면서 생겨나는 캐미까지 훌륭하다. 이들이 만나면서 벌어지는 일들이나 주인공의 내면을 코믹하게 그린 것도 좋은데 이런 점들이 모여서 이 작품을 더 볼만한 것으로 만든다.

더 좋은 것은 그런 요소들의 정도가 적당하다는 거다. 이건 이 작품의 아류작들을 보면 더 확실히 느낄 수 있다. 큰 틀은 시초를 따라해 그대로 두었지만 차이를 주려고 일부러 바꾸고 새롭게 넣은 것들도 있는데 이게 좀 억지스럽거나 어색하여 마뜩지 않은 게 많기 때문이다. 그런 것이 크게 눈에 띄지 않는다는 것만으로도 이 작품의 완성도를 새삼 실감할 수 있다.

뒤에 가서는 이야기를 더 풍부하게 만들기 위해 빙의물의 특징이자 개인적으로는 형편좋은 데우스 엑스 마키나에 버금가는 단점이라고도 생각하는 추가 설정 떠올리기가 나오기도 한다만, 이것 역시 그 정도가 심하지는 않기 때문에 계속 볼 만하다.

만화는 꽤나 전개가 빨라 조금은 축약판처럼도 느껴진다. 세월의 경과를 필요에 따라 훌쩍 건너뛰는데다, 이야기 역시 게임 이벤트 위주로 이뤄져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드라마로서의 서사를 신경써서 풀어내던 일반적인 순정만화를 기대했다면 조금 당황스러울지도 모른다. 대신 덕분에 지루하지 않다는 것은 장점이기도 하니, 가벼운 로맨스 코미디물로 생각하고 본다면 나름 만족하지 않을까 싶다.

아류작들을 만들어낸 여성향 게임 악역 영애물의 시초로 꼽히기는 하지만, 아직 연재중인 작품이라 아직 종합적으로 평하기는 어렵다. 새로운 이야기가 어떻게 이어질지, 또 기존의 것들과는 얼마나 어색함 없이 어우러질지도 궁금하고, 무엇보다 어떤 끝맺음을 맺을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