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락궁이야, 네 집을 지어라’는 한락궁이와 서천꽃밭 이야기를 새롭게 쓴 창작동화다.

표지

한국 신화는 아는 사람이 드물다. 외국인들만 그런 게 아니라 한국사람들도 그렇다. 기록도 거의 없는데다 문화가 바뀌는 와중에 종교와 함께 전승마저 끊기면서 이제는 그것에 대해 이야기해줄 사람조차 찾기 어렵다. 한국 신화는 오랜 종교 변천 과정에 따라 다른 종교와 융합이 되면서 원래의 모습을 잃기도 했는데1, 어쩌면 그렇게 원래의 모습과 이름을 잃어버렸다보니 한국신화라는 것을 알아채기 어려워 더 쉽게 잊혀져버린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나마 제주 설화가 많이 남아있어서, 사실상 현대에 남아있는 한국 신화/설화는 제주 설화인 경우가 많다. 개중엔 꽤 구체적인 묘사가 있는 것도 있어서 한국적인 판타지를 그려보려는 작품에서 사용하곤 했는데, 그 중 하나가 크게 인기를 끈 이후 계속해서 재생산되면서 그나마 한국 신화의 명맥을 잇게 됐다.

이 책도 그런 이야기의 하나라고 할 수 있겠다. 한락궁이와 서천꽃밭을 주제로 사람의 생과 사, 그리고 그것들이 오가는 중에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그렸는데 원래 내용을 유지하면서도 상당히 다른부분도 만들어서 꽤 흥미롭게 볼 수 있다.

특히 ‘책’을 매개로 이승과 저승를 넘나드는 것이 괜찮았는데, 단순하게 통로처럼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분위기가 확 바뀌는 게 좋았다. 소재와 주제가 그렇다보니 중간에 암울한 면도 있고, 주 갈등이 해소된 후에도 앞으로 있을 힘겨운 길이 눈에 선하기도 한데, 책을 통해 다른 세계로 이동하면서 극적인 분위기 전환을 가져와 그것들을 마치 색이 바뀌듯 환상적으로 건너뛰는 느낌이 들었다. 판화 느낌의 삽화가 장면 장면을 잘 살려주어서 더 그렇다.

생각보다 다른 이야기에서 영향을 받은 듯 보이는 요소도 여럿 보이는데, 원래 신화나 전설이라는 것은 서로 닮고 닮는 것이기 때문에 굳이 흠 잡을만한 건 아니다. 그것들이 한락궁이는 물론 현대를 살아가는 ‘아리아’의 이야기와도 잘 어우러졌기 때문에 더 그렇다.

재미있게 보긴 했다만, 이런 감상은 어느정도 원형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것일 수도 있다. 저자는 원형에 없던 것을 더 묘사하기도 했지만, 반대로 원형의 내용을 온전히 싣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신화 원형과 그 변형 이야기들을 알고 본다면 더 재미있지 않을까 싶다.

이 리뷰는 북카페 책과 콩나무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고 작성했다.
  1. 한국 신화의 최고신 중 하나인 미륵이 대표적이다. 한국 신화의 미륵은 불교의 미래불과는 엄밀히 말해서 다른 존재이다만, 미륵이란 이름밖에 안남아있다보니 불교의 그 미륵을 얘기하는 것으로 생각되곤 한다. 새삼 이름이란 얼마나 중요한지 느낀달까. 한국 신화가 제자리를 찾으려면 신들부터 제 이름을 찾거나, 최소한 새 이름이라도 찾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