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할 수밖에’는 살인청부를 소재로 한 소설이다.

표지

피해자, 또는 피해자의 주변인이 사건의 이후로도 떨칠 수 없는 괴로움에 시달리다 결국 살인을 의뢰하게 된다는 이야기의 시작은, 얼핏 이 소설이 일종의 통쾌한 복수극일 것처럼 보이게 한다.

그러나, 이 소설은 전혀 불의에 대한 분노나 그것이 토해지는 것을 봄으로써 얻을 수 있는 일종의 대리만족을 담은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반대로, 사랑하고 이해하는 방식에 대해 그린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저자가 하려고했던 이야기와 실제로 읽히는 이야기가 좀 어긋남이 있다고 느끼게 된다. 사랑이라는 그러한 것이 없다거나 느껴지지 않는 것은 아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보다 더 핵심인 것은 역시 복수라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소설에는 꽤나 많은 사람들이 쉽게 공감할만한 대중적이고 인기있는 악행을 저지른 빌런이 등장한다. 그는 꽤나 복합적인 악행을 다수에게 저지른 인물로 독자들이 등장인물들의 심정 즉 복수심에 쉽게 공감하게 만든다. 살인이라는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함으로써 주요 인물들을 선한 편으로 포장하는 것은 복수극의 흔한 클리셰다. 저자는 심지어 킬러에게까지 그러한 설정을 덧붙임으로 이런 구도를 더 강화했다.

무엇보다 주요인물들의 여러 심경중 그들을 움직이게 하는 제1동기를 복수로 그린게 크다. 사건의 처리라든가 남겨질 자들에 대한 생각이 세부적인 사항을 조정하게 했고 그것이 (복수가 아닌) 다른 면모를 생각케 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이 소설이 끝내 복수극으로 읽히는 것은 결국 그래서다. 다른 면모들이 복수의 부수적인 것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사랑에 대해 말하기 위해 악에 대해 썼다는 저자의 의도가 살짝 실패한 것 같다는 말이다.

주인공의 복수가 실패했다고 시작하면서 주변인들에게서 엿볼 수 있는 복수심을 통해 진범은 누군가 하는 미스터리를 만들어내려 했던 것 같기도 한데, 정작 이야기 내내 그게 그렇게 중요하게 느껴지지는 않았고, 무엇보다 복수심이 있다는 게 다른 걸 희석하는 모양새가 되기도 해 어떻게보면 좀 아쉽다. 왜 그러지 않았는지, 또 왜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좀 더 대비되게 그렸으면 어땠을까 싶다.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고 작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