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에르 굴릭센(Geir Gulliksen)’의 ‘결혼의 연대기(Historie om et ekteskap)’는 한 부부의 시작에서부터 끝까지를 그려낸 소설이다.

표지

취향을 좀 많이 탈 것 같다. 이 소설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부부가 그리 평범한 성향이지 않기 때문이다.

만남부터 은근히 냄새가 났던 이 둘은, 부부로써 살아가는 동안에도 자기들만의 독특한 표현방식을 사용함으로써 다분히 변태적이고 막장스러운 모습을 보인다.

이것을 저자는 마치 전혀 그렇지 않다는 듯 감춰두었다가 하나씩 풀어내며 점점 질리게 만든다. 뒤로 갈수록 막장성이 강해지는 내용에는 나름 호불호가 갈릴만하다.

주요 내용을 포함하고 있으므로 주의 바란다.

일본 성인물의 한 장르인 ‘네토라레’의 성격을 띄고있기에 더 그렇다.

불륜의 한 형태인 네토라레(寝取られ, NTR)—그리고 그 하위 장르인 네토라세(寝取らせ)—는 불륜이 야기하는 파탄적인 면을 부각시켜 더욱 변태적인 형태로 굳힌 장르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생리적인 혐오가 일어 잘 보지 않는데, 이 소설은 성인물과 달리 표현의 수위를 어느정도 제한했기 때문에 생각보다 그렇게까지 역하거나 껄끄럽진 않다.

그건 단지 그들의 불륜과 성 취향에만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시간이 지나면서 나타나는 심리와 관계의 변화를 잘 그려냈기 때문이다. 부부로서의 시작과 끝 그 사이에 일어났던 일들과 그들이 주고받은 대화, 그리고 그게 어떤 식으로 점점 그들을 몰아가는 방아쇠같은 역할을 했는지도 잘 담았다.

그래서 굳이 왜 그런 변태성향을 담았는지 의아한 한편으로는 어째서 그런 대사와 장면을 사용했는지 이해가 가기도 한다.

남자는 특별함을 꿈꾸며, 자유롭게 살라면서 심지어 다른 남자를 만나도 좋다고도 하지만, 실제로는 누구보다 평범한 행복을 그리며 자신만을 사랑해주길 원한다. 그의 변태적인 말들은 그렇게 말하는데도 불구하고 그러지 않겠노라고 하길 바라며 내뱉는 두려움의 토로인 셈이다.

그 누구보다도 그녀가 그럴 수 있음을 잘 알기 때문이다. 애초에 그들 부부도 그렇게 시작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그의 특별하고 싶다는 욕망이 그녀로하여금 스스로의 욕망을 직시할 수 있게끔 하고, 관계의 깨짐에 대한 두려움이 결국 그녀를 더욱 그렇게 하도록 부추긴 셈이 되었으니, 그의 꼴 하나하나가 다 우습다. 자신에게 그리스식 신탁을 내리고, 스스로 그것을 면밀히 실현했으니 참 대단한 원맨쇼가 아닐 수 없다.

소설은 남자가 여자의 입장에서, 또 자식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쓰는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그것이 겉과 속이 다른 남자가 뇌절을 거듭한 끝에 비참한 끝을 맞이하는 모습을 더 잘 보여준다.

호불호가 갈릴만한 변태적인 소재와 내용을 사용했기에 일반적으로 몰입하거나 동질감을 느끼긴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부부로서의 심리나 세부 묘사는 꽤나 현실적이고 보편적이어서 생각보다 공감점이 많다. 그래서 책을 덮고나면 이렇게 써낸 작가의 문장력에 새삼 감탄이 나오기도 한다.

이 리뷰는 북카페 책과 콩나무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고 작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