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은 어쩌다 이렇게 되었나’는 일본인 특유의 국민성이라 할 수 있는 순종성과 장인정신 뒤에 있는 역사와 관련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표지

일본인은 그들만의 것이라 할만한 특유의 국민성을 갖고있다. 그 하나가 권위에 대한 무조건적인 순종이고, 다른 하나가 장인정신이다. 이 둘은 일본인을 얘기할 때 빼먹을 수 없는 중요한 특징이기도 하다.

전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그들의 순종성은 대체 어떻게 형성된 것일까. 저자는 그걸 학습된 무기력으로 본다. ‘학습된 무기력(Learned helplessness)’은 동물에게서 볼 수 있는 행동 유형의 하나로 고통스럽거나 혐오스러운 자극이 반복되도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이 지속될 경우 이 후 벗어날 수 있는 상황이 오더라도 그러려고 하지않는 것을 말한다. 셀리히만(Seligman)과 마이어(Maier)의 전기충격 실험으로 유명한 이 이론이 일본인들에게도 작용했다고 보는거다.

실제로 여러 역사 기록에서 그와 같은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오랫동안 지속되었던 기독교인 제거 정책도 그렇고, 자비없는 불교 탄압도 그러하며, 국민들을 완벽하게 감시 & 관리하는데 쓰인 촌청제나 오인조같은 것들도 그렇다. 이것들이 오랫동안 지속되면서 조금씩 그들의 마음을 갈아나가 결국엔 권력자에게 결코 반항하지 않는 무기력한 상태에 이르게 만들었음을 충분히 짐작케 한다. 국민이 일어나 저항하는 ‘의병’이란게 일본엔 없었다는게 그걸 증명해 보여주기도 한다. 심지어 신하로서 군주에게 상소조차 올릴 수 없었다니 말 다한 것 아닌가. 이렇게 자국민에게조차 악랄했으니, 그러한 행태가 일제강점기 조선인에게도 이어졌으리란걸 어렵지 않게 짐작해볼 수 있다. 일본은 카스트에 못지않은 엄격한 신분제를 가진 나라였던 거다.

그래서 이런 악랄함이 후에 장인정신을 낳았다는 건 꽤 재미있는 점이다. 신분 상승을 꿈꿀 수 없는 사회, 그리고 거기에 적응해버린 무력한 국민. 그렇기에 그들이 할 수 있는건 정해진 신분, 정해진 직업에서 최고가 되는 것이었던 거다. 말하자면 장인정신이란 무사들의 잇쇼우겐메이(一所懸命)의 평민 버전인 셈이다.

악랄했던 무사들이 이런 풍조를 반겨 지향하도록 유도한 것은 그저 함부로 자신들의 분야(장군)를 넘보지 않도록 하려는 정치적인 수단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운 좋게도 그게 어떤 분야에서든 최고이면 인정해주는 문화로 성장했고, 그런 문화가 있었기에 모두가 부러워하는 장인들도 나올 수 있게 해주었다. 무력을 최고로 치며 사람들을 탄압하던 단점이 장점으로 승화한 것이다.

이것들은 지금도 여러 일본인들에게 뿌리깊이 남아있다. 그래서 사축과 장인이 공존하는 것이다.

일제강점기를 통해 한국에는 그 영향이 조금은 남은 것 같다. 부하직원이나 국민을 엮어 감시 & 관리하고, 절대복종을 요구하는 듯한 권력자들의 모습을 보면 말이다. 그러나, 장인을 있게 만든 ‘천하제일의 사상’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 이건 어쩌면 지배를 받으면서도 무기력에 학습되지 않고 끝까지 저항하는 정신이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안좋은 것들까지 떨쳐버리지 못한걸 보면 일견 씁쓸할 수 밖에 없다.

지금의 한국인들은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그 역사적 배경과 이유를 살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