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뿔소를 보여주마’는 80년대 시국사건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연쇄살인 사건을 다룬 미스터리물이다.

조완선 - 코뿔소를 보여주마

시국사건이란 당면 정세나 대세에 따른 사건을 말하는 것으로 용공조작이 대표적이다. 이런 조작 사건은 대부분 고문으로 강제 자백을 받아내는데, 결국 대상자는 사형당하거나 형만 살고 나오더라도 후유증 때문에 고통스럽게 사는 경우가 많다.

이야기는 그런 시국사건 중 하나였던 ‘새벽회 사건’ 관련자들이 실종되면서 시작된다.

후반 전개를 포함한 내용을 담고 있으니, 소설을 보지 않은 사람은 주의 바란다.

그런 만큼 시국사건은 소설의 등장인물들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당시 사건의 관련자였던 이번 사건의 피해자들은 물론, 사건을 조사하는 형사 반장과 담당 검사, 심지어 조언자로 등장하는 범죄심리학 교수도 그렇다. 그뿐이랴. 범인들도 마찬가지다. 성공을 위해 조작한 시국사건들이 26년이 지나 연쇄살인 사건이라는 판을 만들어낸 것이다.

시국사건을 두고 크게 보면 그 가해자였던 현재의 피해자들을 두고 시국사건의 피해자들이 서로 쫓고 쫓기는 모양새다. 이들은 모두 시국사건 피해자의 자식들이라는 면에서 서로 비슷한데 어째서 이렇게 갈리게 된 걸까. 이걸 생각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

차이는 분명하다. 한쪽은 진실을 좇지 않고 뒤로 하거나 성공을 위해 애써 외면했고, 다른 한쪽은 잊지 않은 거다. 그래서 그들의 삶은 더욱 고통스러웠지만 결국 ‘어떤 정의’를 관철해 낸다. 이 분노와 복수라는 정의는 이들을 쫓던 사람들에게도 남아있는 것이어서 결국 그들도 이들에게 동조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 잊었던 분노와 진실에 대한 갈구도 되살아난다. 이건 독자도 마찬가지여서 경찰 측보다는 차라리 범죄자 측 편에 서서 그들의 ‘활약상’을 보게 된다.

그런데, 한가지 생각해봐 할 게 있다. 이들의 복수가 그렇게 정당하냐는 거다. 억울한 죽음과 그로 인한 고통, 그리고 분노. 모두 이해한다. 그래서 내심 통쾌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폭력으로 입은 상처와 분노를 폭력을 통한 복수로 해결하는 것은 단지 입장만 바뀌었을 뿐 그들과 다를 바 없는 행위인 것 같아서 묘한 찝찝함을 남긴다. 그래서 주제가 무엇인가도 조금 헷갈린다.

그 외에도 무려 3명의 유명 인사들이 얽힌 사건임에도 조용히 덮기로 한 후대의 ‘높은 양반들’이라던가, 주체와 대상은 알 수 없고 그저 붕 뜬 듯한 용서와 화해라던가, 이 사건의 이후 진행이나 “영혼의 조련사”들의 이후 행보 등 생각해볼 거리를 강가에 푼 떡밥처럼 참 많이도 남겨놓았다. 후속작이 나와도 좋을 것 같다.

소설은 형사 입장에서 사건을 쫓으며 풀어가는 과정을 묘사했는데 그게 마치 완벽한 예고 살인과 같은 모습을 띠고 있는 게 꽤 흥미로웠다. 그 장치로 소설이 사용되었기 때문에 살짝 영화 ‘본 콜렉터(The Bone Collector, 1999)’가 떠오르기도 했다.

예고 살인의 장치로 사용한 단편들도 꽤 볼만했다. 이것들만 따로 떼어 단편집을 내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역사와 픽션이 잘 버무려진 것도 좋았고, 반전을 포함한 미스터리도 괜찮았으며, 반전에 대해 함정을 판것도 나쁘지 않았다. 무엇보다 재미있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