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잰 레드펀(Suzanne Redfearn)’의 ‘한순간에(In an Instant)’는 갑작스런 사고로 극한 상황에 놓인 사람들의 선택과 파국, 그리고 회복을 그린 소설이다.

표지

인간은 도통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다. 때론 과하다 싶은 것마저도 별거 아니라는 듯 이겨내는가 하면, 반대로 고작 그딴 것 정도라고 치부해버릴만한 것으로 폭발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믿어왔던 사람이 조금만 상황이 달라져도 마치 다른 사람처럼 행동하는 일은 흔하다. 그것이 생존이 달린 극한 상황이라면 더욱 그렇다.

소설은 그런 관계, 상황 속에서 인간들이 벌이는 각양각색의 모습들을 굉장히 잘 그렸다. 우리 일상 속에서도 언제든 일어날법한 일을 그렸으며, 그들이 고립된 이유나 그 상황 속에서 갈등이 붉어지는 요소들도 배치를 잘 했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이야기에 어색함이 없으며, 그게 몰입감을 크게 높여준다.

이것은 사고 당시 뿐 아니라 그 후의 이야기 역시 마찬가지다. 끔찍했던 사고를 일종의 모험처럼 여기는 사람부터, 어떻게든 이겨내려는 사람은 물론, 거짓으로 현실을 도피하는 사람, 차라리 포기해버리려는 사람까지 등장인물들을 모두 조금씩 다르게 설정했는데 그들 모두를 적절하게 잘 다루었다. 이런 인물 구성은 사고로인해 생길 수 있는 다양한 경우를 보여줌으로써 독자 개개인에 가까운 인물상을 제공해주기도 하며, 무엇보다도 이야기를 풍성하게 해준다.

이야기를 3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서술한 것도 좋았다. 약간의 트릭을 이용해 장소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서술자를 만들어낸 대신 관찰자라는 선은 결코 넘지 않도록해서 이야기의 흐름을 좀 더 객관적으로 보게 한다. 이 트릭은 단지 서술을 위한 것만이 아니라 이야기를 통해 전하려는 메시지(또는 질문)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기 때문에 더욱 탁월해 보이기도 했다.

관찰자를 통한 객관적인 시선은 단점이기도 하다. 개인에게 감정이입을 해보기보다는 냉정하게 판단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양한 인물들의 상황이 절로 ‘나라면’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기도 하나, ‘그건 아니지’라는 선을 절대 넘어서볼 수는 없도록 막아서기도 한다.

저자의 개인 경험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인물간의 소위 ‘밸런스’가 무너져있다. 너무 쉽게 한쪽의 편을 들어주기 좋게 판이 짜여있단 얘기다. 관찰자 시점을 위한 트릭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야기가 그들 쪽에만 치중되어있어서 더욱 그렇게 만든다. 이게 생존과 사회적 정의 사이의 선택에 대한 갈등을 좀 더 깊게 고찰을 할 수 없게 한다.

이야기 중간 중간에도 노골적으로 질문을 던지고, 책 후미에 ‘이야기가 끝나고’라는 토론 주제까지 실으며 본격적으로 얘기를 꺼낸 것에 비하면 토론 프로그램의 사회자처럼 중간자로서 어느쪽으로든 의견이 이동할 수 있도록 하는데는 실패하지 않았나 싶다.

대신에 이야기는 훨씬 자연스럽고 완성도가 높다. 한쪽의 입장에 서서 일관된 관점을 유지했기 때문이다. 당연히 끝까지 독서 경험도 좋다.

결론적으로, 어설프게 중도에 서려다가 자칫 왔다갔다만 하고 이도저도 아니게 될 바에는 차라리 지금과 같은 형태로 만든게 나았다는 생각도 든다.

편집에 있어서, 번역은 나쁘지 않아 보이나 교정은 제대로 되지 않아서 오타라고도 할 수 없는 완전히 잘못 쓴 이상한 문장도 더러 눈에 띄어 아쉽다.

이 리뷰는 리뷰어스 클럽을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고 작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