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르 펠레빈(Виктор Пелевин)’의 ‘아이퍽10(iPhuck 10)’은 예술과 인공지능을 소재로 한 SF 소설이다.

표지

생각보다 쉽지 않은 책이다. 현대 미술을 주요 소재 중 하나로 사용하고 있는데, 그걸 상당히 깊게 다루기 때문이다.

소설에 등장하는 작품이 어째서 예술작품으로 인정을 받는지, 그것들이 표현하는 것은 무엇인지 등을 꽤나 제대로 다루고 있는데다가 그걸 묘사할 때도 전문 용어나 인물, 표현 등을 사용하기 때문에 중간중간 도대체 뭐라는 건가 싶은 생각도 절로 들곤 한다.

그런데도 의외로 다음엔 어떻게 될지를 계속 읽게 만드는 힘이 있는데, 경찰 문학가와 미술품 컨선턴트, 인간과 인공지능이라는 조금 어색한 조합으로 뭔가 감춰진 부분이 있음을 암시하며 그 뒤의 진실과 이들의 행보를 궁금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현대의 것을 변형한 듯한 미래의 문물이나 사회상이 의외로 재미있는 것도 있다. 물론 대부분이 일종의 비꼼을 담고 있기어 씁쓸함도 함께 있는 블랙 코미디에 가까워서 순수한 재미와는 좀 거리가 있기는 하다만, 그래도 이게 있었기 때문에 어려운 여러 부분들도 그나마 읽어나갈 수 있지 않았나 싶다.

낮게 깔린 풍자와 냉소는 미래상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한데, 긍정적인 것과는 거리가 있는 것이 작품 전체의 분위기나 이야기와도 잘 어울렸다.

예술쪽에 비하면 좀 빈약해보이기도 하지만 SF적인 면모도 꽤 괜찮다. 어떻게 보면 편리하게 갖다 붙이는 것처럼 보이는 설정도 사실은 지금도 어느정도는 사용중인 기술의 특징을 단편적으로 얘기한 것이라서 크게 이상하진 않았고, 작가의 상상력이 들어간 듯 한 부분도 나름 그럴듯한 가설이라 흥미로웠다.

이야기도 잘 보면 의외로 복선을 깔고 그걸 뒤에서 해소하는 걸 잘해서 꽤 신경써서 구성하고 극을 짰다는 걸 느낄 수 있다.

문제는 너무 어렵게 썼다는 거다. 용어, 인물, 장소, 역사적 사건까지 어려울 뿐더러 생소하기까지 한 것들이 너무 많다. 그런 것들에 주석을 꼼꼼하게 단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소설을 무슨 논문 보듯이 하나하나 찾아 알아가며 읽을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결국 포기하고 넘어가는 부분이 더 많게 된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그게 무의미한 채움인 것은 아니다. 그런 이야기들이 다음으로 이어지는 탄탄한 다리를 만드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래도 역시 꼭 굳이 그렇게까지 하지 않으면 안됐나 하는 생각도 든다.

이야기가 어려워서인지 번역도 이상해 보이는 부분이 있다. 실제로 오타도 있고, 앞에서 안쓴 단어를 언급하며 헷갈리게 하는 등 잘못된 부분도 있지만, 개중에는 인공지능인 ‘포르피리’가 합성한 문장이라며 보여주기에, 일부러 그렇게 쓴 것인지 잘못 번역(또는 편집)된 것인 헷갈리는 부분도 있다.

총평을 하자면, 나쁘진 않다. 독특하다면 독특하기도 해서 한 번쯤 읽어볼 만도 하다. 하지만, 역시 과하게 어렵게 썼다는 생각이 든다.

이 리뷰는 북카페 책과 콩나무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고 작성했다.